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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매경데스크] 무능한 캐디는 없는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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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강원도 평창 골프장에서 만난 캐디는 젊은 남자였다. 여름엔 캐디, 겨울엔 스키강사로 일한다고 했다. 친절한 그는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몰라 허둥댔다. 그가 정성껏 그린 위에 놓아준 공은 홀을 비껴갔다. 함께 라운딩한 일행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도 18홀을 돈 후 캐디피 15만원을 건넸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골프백을 열어보니 퍼터 커버가 벗겨져 있는 게 아닌가.

지역 골프장 캐디 인력난의 씁쓸한 단면이다. 경험이 부족한 아무나 캐디를 하는 바람에 이용객은 불편하다. 무능한 것보다 없는 게 나으니 '캐디 선택제, 셀프 라운드' 확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골프장 565곳에 캐디 5만여 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활동 중인 캐디 수는 3만6000여 명에 불과하다. 평균연봉 5500만원에도, 주말근무와 감정노동으로 요즘 MZ세대가 꺼리는 직종이다. 골프장이 위치한 한적한 시골에서 살면 연애와 결혼도 힘들다. 수도권은 그나마 낫지만, 인구소멸 지역으로 갈수록 캐디 수급은 더 어려워진다.

서비스 질은 떨어지는데 캐디피는 치솟고 있다. 현재 전국 골프장 평균 캐디피는 14만8500원으로, 2019년 12만2700원보다 21% 올랐다. 유명 회원제 골프장과 고급 대중제 골프장들은 캐디 이탈을 막기 위해 캐디피를 17만원까지 인상했다. 이런 상승세라면 캐디피가 그린피를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다. 버디값 등 팁을 포함하면 작년 캐디피 규모는 2조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골프 인구가 급증하기 직전인 2018년 1조760억원보다 2배 가까이 폭등했다.

그린피, 카트피, 식음료비까지 줄줄이 오르자 캐디피에 대한 불만이 폭주한다. 비용 대비 만족도가 가장 극명하게 달라지는 게 캐디피이기 때문이다. 숙련도와 인성에 따라 서비스 질이 확연하게 차이 나지만 캐디피는 같다.

결국 해법은 '노캐디'다. 이용객이 직접 카트를 운전하면 캐디피를 절감할 수 있다. 경주의 노캐디 골프장에 가보니 몸이 분주해도 마음은 편했다. 거리측정기로 클럽을 선택하고 그린 경사를 읽으면서 골프를 배워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전 코스 자동주행하는 카트여서 버튼만 누르면 움직였다. 무엇보다 '이상한 캐디'를 만날 가능성이 아예 없어서 좋았다. 신경에 거슬리는 타인과 4~5시간 동행은 고통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18홀 이상 골프장 중 노캐디제는 7개뿐이다. 캐디선택제도 주로 9홀 대중제 골프장 167곳이나 회원제 골프장 42곳의 주중 회원 라운딩에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이 중에서도 캐디 수급이 원활한 수도권 골프장의 캐디선택제 비중은 25.8%에 불과하다.

골프장들은 중대재해법 처벌 강화와 안전사고를 핑계로 노캐디에 소극적이다. 산악형 골프장이 많다 보니 카트 전복 위험이 높다. 하지만 캐디가 있어도 사고는 일어났다. 그러니 속도를 통제하는 자동주행카트 등 안전 장치를 강화한다면 노캐디 운영에 문제는 없다. 캐디가 없으면 사고 책임이 온전히 골퍼에게 있어서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대부분 해외 골프장은 캐디 없이 잘 굴러간다. 한국에서만 캐디 동반 필수가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됐다. 인구절벽 시대 캐디 인력난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이니 이제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늦장 플레이로 경기 진행이 어렵다면, 캐디피 절반만 받고 카트 운행과 클럽만을 챙겨주는 드라이빙 캐디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티오프 간격을 너무 촘촘하게 배정해 손님을 더 많이 받는 데 급급한 골프장의 무리한 운영도 지양해야 한다. 자질이 없는 '무늬만 캐디'를 더 이상 필드에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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