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해자 못 받게 된 퇴직연금 계산 시 '유족연금 공제 후 상속'서 '상속 후 공제'로
전원합의체 판례 변경…유족 전체에 유리한 방식…"사회보장 재원으로 가해자 면책 안 돼"
대법원 |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연금 수급권자가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했을 때 유족이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총액이 종전보다 다소 늘어나도록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1일 교통사고로 숨진 A씨의 유족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 연금 등과 관련한 종전 판례를 적용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학 교수로 근무해 사학연금에 가입돼 있던 A씨는 201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연합회를 상대로 낸 소송 과정에서는 A씨가 사고로 사망하지 않고 대학에 계속 근무하다 퇴직했다면 받았을 퇴직연금, 즉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몫인 일실 퇴직연금과 A씨의 사망으로 유족들이 받게 될 유족연금의 관계가 문제 됐다.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일실 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해자로부터 받고, 유족연금도 받는다면 일종의 중복 수급에 해당하게 되는 만큼, 법원은 손해배상금을 계산할 때 일실 연금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고 있다.
문제는 일실 연금은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에게 청구권이 두루 인정되는 반면, 유족연금은 국민연금법을 기준으로 25세 이상 자녀나 60세 미만 부모는 제외되는 등 지급 범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애초에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에서 유족연금을 언제 공제하느냐에 따라 유족이 받을 수 있는 실제 액수가 달라진다.
배상금 총액에서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한 금액을 각각 유족에게 상속분만큼 나눠주는 경우(공제 후 상속)보다, 배상금 총액을 일단 유족에게 상속분만큼 나눈 뒤 실제 유족연금을 받는 유족에게만 공제하는 경우(상속 후 공제)가 일반적으로 배상금 총액 측면에서는 유족에게 더 유리하다.
가령 배우자와 25세 이상 자녀 2명이 있는 연금 가입자가 숨졌고 일실 연금이 7천만원, 배우자가 받을 수 있는 유족연금이 3천50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공제 후 상속설을 따른다면 일실 연금(7천만원)에서 유족연금(3천500만원)을 공제한 뒤 남은 일실 연금(3천5천만원)을 상속분만큼 배분하게 되므로 배우자는 1천500만원, 자녀들은 각 1천만원을 받게 된다.
반면 상속 후 공제설을 따르면 일실 연금을 상속 비율에 따라 우선 배분한 뒤(배우자 3천만원·자녀 각 2천만원) 배우자의 상속분에서만 유족연금을 공제하게 된다. 이 경우 배우자의 배상금은 0원이 되지만 자녀들은 각각 2천만원씩 받을 수 있어 배상총액이 조금 더 늘어난다.
유족이 받은 일실 연금과 유족연금 총액으로도 공제 후 상속설은 총 7천만원이 되지만, 상속 후 공제설은 총 7천500만원으로 더 크다.
이번 사건에서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제 후 상속설을 택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관들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상속 후 공제설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망인의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은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상속분 비율에 따라 공동상속되고, 그 후 수급권자가 지급받는 직무상 유족연금은 수급권자가 상속한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을 한도로 그 손해배상 채권에서만 공제된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연금의)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은 '상속받은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을 지급받더라도 같은 목적의 급부를 이중으로 지급받는다고 볼 수 없다"며 "수급권자가 아닌 상속인들이 상속한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 유족연금을 공제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공제 후 상속 방식과 같이 손실 전보의 중복성을 강조해 직무상 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되고 수급권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법원이 선언한 법리는 향후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다른 연금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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