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통·금고에서 쏟아진 돈다발···고액체납자 696명 국세청에 덜미

국세청이 21일 고액 세금 체납자의 자택에 있는 김치통에서 찾아낸 돈뭉치 사진을 공개했다. 국세청 제공

A씨(92)는 본인 소유의 땅을 팔고 수십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체납했다. A씨 자녀들은 A씨 계좌에서 양도대금을 수백 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쪼개기’ 인출하고 여러 계좌로 분산 이체하는 방법으로 강제징수를 피했다. 국세청은 돈을 인출하는 A씨의 자녀들을 은행 CCTV로 확인하고 탐문·잠복해 자녀의 주소지 4곳을 동시에 수색했다. 김치통과 서랍에서 나온 현금 뭉치와 골드바 등 총 11억원(가압류 9억원 포함)을 징수하고, 체납자의 자녀·며느리 등 일가족 7명을 고발했다.

국세청은 21일 지능적인 수법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세금을 낼 능력이 있는데도 호화생활을 하는 고액체납자 696명의 재산을 추적해 잡아냈다고 밝혔다. 체납자들은 김치통·금고 등에 돈다발을 숨겨놓거나, 돈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친인척에게 이전·은닉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국세청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재산추적조사로 징수한 체납세액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

국세청은 특히 최근 가격이 급등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를 상대로 올해 하반기에만 287억원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양도소득세 수억원을 체납한 건축업자 B씨는 아파트 분양권을 판 돈으로 20여종의 가상자산을 사서 모친과 사촌의 개인 지갑으로 옮겼다. 국세청은 가상자산 추적프로그램을 활용해 체납자의 모친과 사촌에게 이전된 사실을 확인하고, 모친과 사촌을 상대로 세금을 받아내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은 “가상자산을 친·인척 명의로 이전·은닉한 혐의가 있는 체납자는 가상자산 추적프로그램을 활용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고 거짓 신고한 상속인들도 잡아냈다. 양도소득세 수십억원을 체납한 사망자 C씨는 생전에 자녀와 공모해 땅을 판 돈을 수표로 발행한 후 법무사를 통해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재산을 숨겼다. C씨가 사망하자 자녀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상속을 포기하고 강제징수를 피했다. 국세청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자녀 거주지를 수색하니 개인금고와 옷장에서 현금다발 2억원이 나왔다.

국세청은 그밖에도 강원랜드 슬롯머신 당첨금 수억원을 은닉한 부동산분양업체 대표, 배우자 명의의 해외보험상품으로 재산을 은닉한 비뇨기과 의사, 리스보증금 수억원을 내고 롤스로이스 차량을 빌려 타는 등 호화생활을 누리면서 세금은 수십억원 체납한 화장품 제조업체 대표 등을 상대로 세금 징수에 나섰다.

세금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하면 거둔 세금액수에 비례한 포상금이 지급된다. 국세청은 “고액·상습체납자의 숨긴 재산을 찾아 징수하는 데 신고가 큰 도움이 된다”며 “국세청 누리집 등에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등을 참고해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국세청 직원들이 고액 세금 체납자의 자택을 수색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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