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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페루로 진격하는 韓 방산… 변수는 초대형 항구 틀어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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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산이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가 될 페루로 진격했다. 페루에서 열린 한국·페루 정상회담을 계기로 현대로템의 K2 전차 수출이 가시화하는 등 양국 육·해·공 방산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방산업계와 외교가에선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 최근 문을 연 페루의 초대형 항구 찬카이항(Chancay Port)이 향후 한국 방산 수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지난 16일 페루 육군과 지상무기 수출 총괄협약을 맺으면서 K2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 수출이 사실상 확정됐다. 양측은 이미 공급 물량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은 앞서 올해 5월 페루로부터 차륜형 장갑차 공급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가격이 3배가량 더 비싼 K2 전차 수출까지 성사시켰다.

해양 방산에선 잠수함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잠수함 공동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페루 해군 맞춤형 잠수함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앞서 4월 시마조선소로부터 6406억원 규모의 함정 4척 현지 건조 계약을 따냈다. HD현대가 함정 공동 생산에 이어 잠수함 공동 개발까지 맡는 것이 유력해지면서 중남미 해양 방산 공략의 우위를 점했다는 평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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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 K2 전차. /현대로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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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방산에선 전투기 부품 공동 생산을 추진하기로 했다. 페루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도입을 확정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페루 국영 항공 기업 세만(SEMAN)이 KF-21 부품을 페루 현지에서 공동 생산하는 MOU를 맺었다. 한국항공우주는 페루 공군에 KF-21과 다목적 전투기 FA-50을 패키지로 묶어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구영 한국항공우주 사장은 “페루를 생산기지로 거점화해 전투기 교체가 시급한 중남미 국가들을 공략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와 방산업계가 페루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78㎞ 떨어진 곳에 들어선 찬카이항의 존재와 역할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찬카이항은 리마에서 15일 개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하루 전날 개항했다.

찬카이항은 중국이 5년간 13억달러(약 1조8100억원)를 투입해 1단계 건설을 마친 초대형 항구다. 최고 수심 17.8m에 접안 시설이 15개에 달한다. 총 투자 규모는 30억달러가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간 1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 600만톤(t)의 화물, 16만대의 차량 등을 처리할 수 있다. 해상 운송 시간과 비용을 줄여 찬카이항을 남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허브로 만드는 게 중국의 구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찬카이항을 중국 일대일로(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의 중남미 거점으로 선언했다. 페루 외에 브라질·칠레·에콰도르·콜롬비아 등도 찬카이항을 이용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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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코스코해운(COSCO Shipping)이 운영을 맡은 페루 찬카이항. /코스코해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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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카이항 운영권은 지분 60%를 가진 중국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COSCO Shipping)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다. 페루는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중국에 최소 30년간의 항구 독점 운영권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을 비롯한 일각에선 중국이 찬카이항을 군사적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찬카이항은 최첨단 기술이 총망라된 스마트 항구로 지어졌다.

해양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군사 시설로도 이용할 것이란 게 미국 측 주장이다. 로라 리처드슨 전 미국 남부사령부 사령관은 이달 초 중국 해군이 찬카이항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남겼다. 중남미 언론 매체 센트로아메리카360은 “미·중 충돌이 일어날 경우 페루가 중국군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찬카이항이 지부티에 있는 중국 해군 기지와 유사한 기지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2017년 일대일로 참여국인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해군 기지를 세웠다.

찬카이항 개항은 공교롭게도 한국 방산업체들이 페루 진출을 본격화하는 시점과 겹쳤다. 방산업계에선 K2 전차 등이 수출될 경우 찬카이항을 이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내에서 찬카이항과 중국의 연관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될 경우 한국의 무기 수출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중국에 대한 초강경 공세를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국인 한국의 첨단 방산 제품이 중국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것을 두고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일부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이 찬카이항을 이용해 기밀 수집을 할 위험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다”며 “한국산 무기에 미국 원천기술이나 지식재산권이 포함됐을 경우 수출 허가를 명분으로 제동을 걸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이 찬카이항을 건설한 것은 광물이나 농산품 등 무역 교류가 많은 중남미 지역과의 운항 시간을 줄이려는 상업적 목적이 가장 크기 때문에 군사적 용도에 대한 우려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김남희 기자(kn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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