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숙. 만개의 레시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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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과일이지만,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풍부한 항산화 성분을 가진 품종이다. 탁월한 숙취 해소 효과뿐 아니라 감기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 예방, 뇌졸중 예방 등 심혈관 보호 기능과 암 유발 물질 제거 등 복합적인 건강 효과를 낸다.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무지개색의 식물 영양소 중 하얀색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데, 배는 대표적인 하얀색 과일”이라며 “식물 영양소 프로파일에서 하얀색은 다른 색에 비해 다양한 기능성분을 품고 있어 이에 해당하는 과일과 채소 종류도 많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배추, 무, 마늘, 양파, 우엉, 연근 등의 뿌리채소와 배, 바나나 등의 과일이 포함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가 발행한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배의 1회 섭취량은 100g 정도가 적당하다. 과일류 1회 분량 에너지(50㎉)에 따른 것으로, 배 하나가 400~600g의 크기이기에 손질했을 땐 1~2쪽 정도다. 과육의 약 80%가 수분 성분이라 열량이 45~50㎉로 낮으면서도 식이섬유, 비타민B와 C 성분, 칼륨,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의 알칼리성 무기질 성분이 많다. 아스파라긴산 등의 아미노산류와 폴리페놀, 트리테르펜, 글루코사이드 등의 항산화 물질 등도 풍부하다.
권 교수는 “서양 배와는 맛과 성분 함유량이 다른 한국 배는 외국에서도 으뜸으로 평가할 정도”라고 지적한다. 배의 품종은 크게 유럽 배와 중국의 북방형 동양 배, 우리나라와 일본의 남방형 동양 배 등으로 나뉜다. 녹색의 얇은 껍질을 가진 표주박 형태의 유럽 배와 달리, 한국 배는 두꺼운 갈색 껍질을 한 동근 모양이다. 식감 역시 약간 까끌까끌하면서도 아삭하다. 이런 특징은 ‘석세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석세포는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과육의 세포벽이 두꺼워지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때 식이섬유와 각종 기능성분도 더욱 풍부해진다.
특히 한국 배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클로로겐, 말라신, 카테킨, 루틴, 케르세틴, 캠페롤 등 다양한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다. 숙명여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등에 따르면, 이런 성분이 한국 배가 서양 배보다 풍부해 알코올 흡수 제거와 억제 작용이 더 탁월하고 구토, 두통, 속쓰림, 피로감 등의 숙취 증상도 유의미하게 완화한다.
숙취는 간의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대사물질이 체내에 쌓이면서 발생한다. 폴리페놀 등의 물질은 알코올 대사 활동을 자극하고 풍부한 수분이 탈수 증상을 막고 이뇨 작용을 자극해 아세트알데히드의 체외 배출을 돕는다. 당분과 아스파라긴산 역시 알코올 대사 활동에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배의 항산화 물질은 다양한 호흡기 건강과 심혈관 건강, 만성 면역질환 증상 개선 등에도 효과를 낸다. 신체 대사 노폐물인 활성산소를 제거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체내 염증을 완화하는 등 복합적으로 기능한다.
국외 동물실험에서 배의 항산화 물질은 기관지를 확장하고 점막층을 두껍게 만들어 호흡기 염증 징후를 낮췄다. 코호트(특정한 기간에 공통된 특성이나 경험을 가진 집단. 주로 비교 분석 연구 등에 쓰인다) 분석에선 배와 사과의 섭취량이 늘수록 천식 증상이 완화하거나 진단율이 낮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또 흡연자가 하루 한 번 이상 섭취했을 땐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발병 위험도 1에서 0.70 수준으로 낮아졌다.
배의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이 염증성 장질환이나 과민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효과도 보고됐다. 동시에 심부전 질환에 사용하는 약물인 ‘ACE 억제제’(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저해제)와 유사한 심혈관 보호 기능도 확인된다. 이 약물은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고 심장의 산소 소모량을 감소시키는데, 클로로겐산과 폴리페놀 등이 혈관 내피세포를 보호하고 혈관기능을 개선해 유사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비흡연자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고 뇌졸중 발생 위험을 일부 낮췄다는 국외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동양 배 품종의 폐암, 유방암과 간암 세포에 대한 암 예방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가공식품을 장기 보관하기 위한 첨가물이자 암 유발 물질로 알려진 아질산염을 활발히 소거한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동양 배의 아질산염 소거 활성률은 80.7~86.7%로 양파(50%)나 키위(75.3~81.8%) 등 다른 식물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다만, 배의 건강 기능성에 대한 임상연구 규모는 대부분 소규모 수준이라, 약으로 생각하고 과다 섭취하기보단 평소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와 함께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배에 함유된 주요 기능성분. 자료=청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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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객원기자, 사진 청과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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