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징어는 외투막으로 물을 흡입한더. 나중에 천적을 만나면 외투막을 수축해 물을 내뿜어 추진력을 얻는다. 이 원리로 주삿바늘 없이 소화기관 내벽에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 개발됐다./미 몬테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징어의 물 분출 원리를 이용해 바늘 없이 약물을 소화기관 내벽 안으로 전달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방식은 내시경(endoscopic)이나 스스로 이동하는 캡슐(autonomous)에 들어가 이동 축 방향(axial) 또는 수평(radial)으로 약물(녹색)을 전달한다./MIT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징어나 갑오징어가 추진력을 얻는 원리를 이용해 주삿바늘 없이 간단하게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비만 치료제나 백신은 분자가 커서 주사로만 투여했는데 이번에 먹는 캡슐에 넣어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조반니 트라베르소(Giovanni Traverso)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2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오징어가 물을 뿜어 추진력을 얻고, 잉크를 뿜어 천적의 눈을 가리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위장관 내벽에 직접 당뇨·비만 치료제 같은 약물을 전달하는 캡슐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주사제 불편 해소해 치료 효과 높여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코로나 백신은 모두 분자가 커서 주사로만 투여할 수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나, 질병을 일으키는 항원에만 결합하는 단클론 항체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큰 약물은 피부에 주사하지만, 일부는 인체 내부 특정 기관에 직접 주사해야 하므로 내시경 바늘이나 최근에 개발된 식용 로봇 바늘 장치가 필요하다. 모두 환자에게 불편해 투여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
트라베르소 교수는 노보 노디스크 연구진과 함께 오징어, 갑오징어 같은 두족류에서 볼 수 있는 물·잉크 분사 작용을 모방한 마이크로제트(microjet·미세분사) 전달 시스템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돼지 실험에서 고압 액체 분사 방식으로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와 유전자를 제어하는 짧은간섭RNA(siRNA)를 위장 조직에 직접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달 방향도 내시경이나 캡슐이 이동하는 수직 방향 또는 좌우 방향 모두 가능했다.
오징어는 머리를 둘러싼 외투막 안으로 물을 빨아들였다가 나중에 압축해 물을 분사한다. 분출 방향도 조절할 수 있다. 연구진은 캡슐 안에 이산화탄소를 넣고 압축하거나 단단히 감긴 스프링을 넣었다. 캡슐이 수분 많고 산성도가 높은 소화기관 벽에 붙으면 이산화탄소나 스프링이 녹는다. 그러면 약물이 오징어의 물이나 잉크처럼 고압으로 벽에 분출돼 안으로 들어간다.
인체 호르몬을 모방한 위고비나 mRNA 백신은 소화관에서 쉽게 분해된다. 먹는 약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이런 약물을 알약 같은 캡슐에 넣고 소화기관 내벽으로 분출하면 안전하게 안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약물을 전달하는 캡슐이 개발됐지만 대부분 미세 바늘을 이용했다. 이번 연구진은 오징어의 액체 분출 원리를 이용해 바늘을 없앴다. 내시경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에 동물의 혈중 약물 농도가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했을 때와 같은 수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징어 방식의 약물 방출로 인한 조직 손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미 MIT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인슐린 전달 캡슐./MIT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거북에서 영감 받은 캡슐 모양
MIT 연구진은 지난 2019년에 이번 약물 전달 기술의 기반이 된 캡슐을 발표했다. 트라베르스 교수는 당시 MIT 화학공학과 로버트 랭어 교수와 함께 사이언스에 알약처럼 입으로 삼키면 위장에서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는 ‘먹는 주사제’를 개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캡슐은 미세 바늘로 약물을 전달했다. 먹는 인슐린 주사제는 콩알만 한 크기다. 윗부분은 도토리처럼 뾰족하고 아래는 납작해 전체적으로 종 모양이다. 안에는 인슐린과 주삿바늘이 들어 있다. 캡슐에는 이런 주사제 여러 개가 들어간다.
당뇨병 환자가 캡슐을 복용하면 위까지 전달된다. 캡슐은 위산에 녹아 사라지고 주사제가 밖으로 나와 위벽에 달라붙는다. 최종적으로 스프링의 힘으로 주삿바늘이 위벽에 박혀 인슐린을 주사한다. 위벽은 통증을 감지할 수 없어, 주삿바늘로 아플 일은 없다.
당시 캡슐은 돼지 실험에서 성인 당뇨병 환자가 한 번에 복용하는 5㎎ 용량의 인슐린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인슐린 주입 후 주사제는 대부분 몸 안에서 녹아 사라지고 일부 녹지 않는 부품은 배설물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됐다.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캡슐 모양 역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연구진은 주사제의 외형을 뒤집혀도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거북 등 껍데기처럼 만들었다. 덕분에 주사제가 소화기관 안에서 구르다가 마지막에는 늘 바닥이 위장 내벽 방향이어서 주삿바늘이 제대로 들어간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당시 캡슐 연구 역시 인슐린 생산 1위 기업인 노보 노디스크가 참여해 상용화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8202-5
Science(2019),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u2277
이영완 기자(ywle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