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5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문을 대독하는 모습.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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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년째 이어지는 세수 부족으로 재정 압박을 받는 가운데, 국회는 오히려 재정을 위협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경제와 산업 발전을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지역구 개발이라는 공통의 정치적 목적에 여야가 앞다퉈 같은 법안을 내놓기도 한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 5월 출범한 제22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발의된 예타 면제 관련 법안은 총 39건에 이른다. 산업단지·철도·공항 등 사업비가 수조원에 이르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지역·산업 지원을 위해 특례를 주는 등의 내용이다. 예타는 대규모 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에 타당성‧필요성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평가해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객관적인 재정 투입 효과보다 지역 표심을 우선시하며 예타 면제 법안을 계속해서 통과시키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중부권동서횡단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 3건은 국민의힘에서 임종득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선 임호선‧문진석 의원이 각각 올린 법으로, 여야가 함께 예타 면제를 바라고 있다. 충북 서산에서 경북 울진까지 연결하는 이 철도 사업에 예상되는 총사업비는 6조3604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지난 2019년 국토교통부의 사전타당성조사에서 0.242 수준의 낮은 비용 대비 편익(B/C)을 기록한 적이 있다. B/C는 1을 넘어야 사업에 경제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포퓰리즘 논란에도 여야가 통과시킨 달빛고속철도 사업(0.438)보다도 경제성이 낮다는 의미다.
지역 개발사업을 위한 예타 면제 법안에는 지역구 의원들이 우르르 동참하기도 한다. 우주항공청이 있는 경남 사천 지역을 개발할 땐 예타를 면제해야 한다는 법안 2건은 각각 사천을 지역구로 하는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 진주를 지역구로 둔 박대출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인근 지역 의원들이 참여했다. 발의할 때부터 ‘경제성이 낮아서 법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안도 있다.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동남권 순환광역철도 관련 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철도는 예타에서 B/C가 낮게 평가된다”면서 법안에 국가가 철도 운영비를 전액 부담하게 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앞으로의 국가사업에서 예타 면제를 더 쉽게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5건이나 발의돼 있다. 현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이 중 300억원 이상을 국가가 재정지원하는 사업에 대해 예타를 하고 있다. 이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600억원 이상 등으로 넓혀 예타 면제의 허들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지난 21대 때도 국회는 개원 초 6개월 동안 예타 면제‧완화 관련 법안을 41건이나 내놓았다. 이중 부산가덕도 신공항의 예타 면제를 요구하는 법안 등이 국회를 통과해 앞으로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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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국책 사업’이라며 수조씩 예타 면제
최상목(앞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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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회의 입법을 통한 예타 면제 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타는 특정 사업을 할지 말지에 대해 검토해서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자고 하는 것인데, 법으로 해당 사업을 하도록 만들어버리면 사전에 타당성 조사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정부 역시 재량적 판단에 따라 해마다 수조원대 사업의 예타를 건너뛰게 해준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국가재정법 제38조 제2항 제10호에 따라 ‘국가 정책적 사업’이라고 규정하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이른바 ‘10호 예타 면제’다.
실제 정부는 올 9월까지 6조8673억원 규모의 사업을 10호 예타 면제로 처리했다. 지난해도 6조8021억원이 10호 예타 면제를 받았다. ‘김건희 여사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은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사업 등이 이에 해당했다. 기재부는 “상당 기간 부처 간 협의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사업계획을 구체화하고, 국무회의에서 면제를 의결하는 엄밀한 절차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예타 면제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로서는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국 곳곳에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이 우후죽순 생기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없이 정부 재정만 계속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타 면제 사업은 중앙정부의 재정이 주로 들어가지만, 지방자치단체에도 일부 부담을 지게 한다면 무분별한 지역 개발을 일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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