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논설위원 |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2020년 10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을 때 이 대표가 한 말이다. 4년여가 지난 이달 15일 다른 사건으로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자 이 대표는 “국민 여러분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서 판단해 보면 충분히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판결이 상식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사법 살인” 법원에 독설 쏟아낸 野
민주당의 반응은 훨씬 원색적이다. 판결 이튿날인 16일 장외집회에선 “미친 판결” 같은 격한 반응이 나왔다. 이어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사법 살인”, “(담당 판사가) 서울 법대 나온 게 맞냐” 등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판결 이전부터 민주당은 검찰독재대책위원회, 사법정의특별위원회 등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여론전에 나섰고, 이 대표 지지자들은 100만 장이 넘는 ‘무죄 탄원서’를 무더기로 법원에 냈다. 판결 당일에는 지도부와 지지자들이 법정 안팎에 대거 집결했다.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민주당은 6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에도 “판사의 선입견, 독선과 오만” 등 비난을 쏟아냈다. 민주당이 여론전을 펼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 대표 판결이 부당하다는 주장에 더 많은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법원도 이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법원을 향한 과도한 독설과 압력이 반복되면 오히려 반감이 커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지지자들은 25일 열리는 이 대표 위증교사 1심 재판부에도 112만 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냈다.
국민의힘은 이런 민주당을 “판사 겁박”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실제론 민주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한동훈 대표는 “판례를 따르더라도 유죄”라고 했고, 주진우 의원 등은 “징역 1년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며 구체적인 양형까지 언급했다. 유죄를 선고하라고 법원을 압박한 것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여당 의원들이 이 대표 재판을 생중계하라며 법원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번엔 실형” 압박 수위 높이는 與
이 대표가 선거법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여당은 더욱 기세가 오른 모양새다. 위증교사 재판에서는 실형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바로 법정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당내에는 어제 ‘재판 지연 방지 태스크포스’를 설치했다. 민주당처럼 별도 기구를 동원해 여론에 호소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여당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당의 모습을 보니 이 대표 선거법 판결 뒤 “사법부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것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헌법은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야는 이 대표 재판을 놓고 경쟁하듯이 법관의 ‘양심’을 흔들고 ‘독립’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재판의 당사자가 되면 법정에서 증거와 법리를 놓고 다툰 뒤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항소와 상고를 통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볼 뿐, 법정 밖에서 법원을 어찌해 보겠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한다. 이게 건전한 상식이고 법치의 기본일 텐데, 두 정당은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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