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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다. 중절모를 쓴 사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 말이다. 잎이 달린 사과는 모자챙에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배경에는 푸른 바다와 먹구름이 낀 흐린 하늘이 보인다. 그림 속 남자는 누구고, 사과로 얼굴을 가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인상적인 초상화 ‘사람의 아들(1964년·사진)’은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마그리트는 스스로 화가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작가는 글로 생각을 표현하듯,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초현실적인 그의 그림들에서 화가의 생각을 단박에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마그리트는 익숙한 두 개의 이미지를 합성해 완전히 낯선 것으로 만든 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붙이곤 했다.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중절모를 쓴 신사와 사과는 익숙하고도 평범한 이미지다. 사과를 남자의 손이 아니라 얼굴 앞에 배치하는 바람에 낯설고도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됐다.
사실 이 그림은 마그리트의 자화상이다. 당시 66세였던 화가는 자신의 얼굴 대부분을 초록 사과에 가려버리고 눈의 일부만 보이게 했다. 초록 사과는 보통 젊음을 상징한다. 외투에 중절모는 중년 남성들이 선호하는 복장이다. 푸른 바다와 먹구름도 대비를 이룬다. 가장 특이한 건 왼팔이다. 팔꿈치가 앞으로 돌출됐고 팔은 뒤로 약간 굽었다. 인체 구조상 불가능하고 기괴하다. 어쩌면 화가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온갖 모순과 대비되는 감정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그리트는 우리의 눈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그림 속 남자는 푸른 사과에 우리의 시선을 잡아두고선, 늙고 기괴한 자신의 진짜 모습은 철저히 감추고 있다. 그러니 표면에 있는 사과에 속지 말라고, 그 이면을 보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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