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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삼성전자가 위기를 넘기 위한 6가지 비책은 [전문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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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10월 8일(현지시각)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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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나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인공지능(AI)에 필수적인 고대역 메모리(HBM)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파운드리 사업도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티에스엠시(TSMC)와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주가는 ‘4만 전자’가 되었다가 최근 반등했으나 향후 흐름은 불투명하다. 에이치비엠·파운드리에서 문제가 드러났지만 삼성전자의 위기 원인은 보다 근원적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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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기업의 함정





지난 20년간 삼성이 이룩한 혁신은 무엇인가. 바로 떠오르는 게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삼성전자가 1등 기업이 항상 빠지는 함정에 걸려들었다고 본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기업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반도체산업에서 독보적 지위를 누리던 인텔은, 1980년대 그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버리고 시피유(CPU)에 집중한 덕택에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이 됐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는 인텔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장과 함께 빠르게 확대된 지피유(GPU)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탓에 인텔은 ‘다우 30’에서 탈락했다. 1등 기업이 계속 변신하지 못하면 2등으로, 나아가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점을 인텔이 잘 보여준다.



1위 기업엔 벤치마크 대상이 없다. 경영자는 이기적인 존재로 자신의 보상이나 임기연장을 추구하는 존재다. 1등 기업 경영자도 ‘현재 1등’을 만들어 준 성과를 극대화하려 한다. 새로운 시도에 따른 성과는 후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실패할 경우 책임만 뒤따르기에 새 도전을 꺼린다. 에이치비엠 사업에서 삼성전자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에이치비엠도 삼성이 앞서가는 분야였지만 수요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앞서가는 메모리 분야에 회사 자원을 집중투자하고 에이치비엠 사업을 철수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삼성전자를 따라잡아야하는 2등기업 에스케이하이닉스나 3위 마이크론과는 다른 1등 기업 경영자의 입장이다. 새로운 변신은 스스로의 성공요인을 파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삼성전자 경영진의 결정은 이해할 만하다.



에이치비엠의 핵심 공정 기술은 ‘패키징’이다.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는 한미반도체다. 이 회사는 1980년대 초반 설립 이후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벤더로 삼성전자와 같이 성장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미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려 다른 회사를 만들려 하자 한미반도체와의 갈등이 불거졌고 급기야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이 소송에서 삼성전자는 패소하면서 한미반도체의 선진적인 패키징 기술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한미반도체를 우회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현재 위기는 이 생태계 구축이 더디거나 완성되지 않아서라고 나는 본다. 특히 에이치비엠이 주문자 ‘맞춤형’ 상품이라는 점에서 ‘표준’ 상품 공급에 익숙한 삼성으로선 새 생태계 구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생태계 구축 문제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도드라진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사업과 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한다. 이런까닭에 휴대전화 사업과 반도체 설계업을 하는 애플은 삼성전자에 고객이자 경쟁자가 된다. 이런 삼성전자의 이중적 지위를 해소하기 위해선 사업부 분사 혹은 분리 매각이 정답이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런 이중적 지위에 따른 생태계 구축 난망은 현재의 위기를 낳은 또다른 배경이다.







위기를 넘기 위한 6가지 비책





위기의 본질이 이러하다면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책도 가늠해볼 수 있다. 나는 그 중심에 주주가 있다고 본다. 우선 누가 경영진에게 리스크를 감내하고 변신을 유도해야 하나. 바로 주주다. 우리는 ‘재벌‘의 창업주(최대주주)에게 이런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임자, 해봤어?”할 때,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에 도전할 때 100% 확신을 가졌을까? 결과를 알 수 없어도 경영진에게 권한을 주며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도전해 보자고 채근질했다. 이것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실패는 두렵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주주가 경영진에게 책임을 따지지 않을 것이니 리스크 있는 사업에 회사 자원을 얼마나 투입할지를 결정해 줘야한다. 삼성의 주주가 경영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면서 책임도 지웠기 때문에 경영진은 안전한 선택만 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토대로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 방책은 이렇다. 첫째, 이사회와 집행임원 역할을 구분하고 집행임원의 과제도 명확히 해야 한다. 이사회는 위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고, 이에 따라 책임을 집행임원에 물어야 한다. 회사가 투자할 자산 중 얼마를 기존 제품의 고도화에 활용하고 나머지 얼마를 새로운, 미래를 위해 투입할 것인지를 집행임원에게 정해줘야 한다. 둘째 보상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핵심은 회사의 중장기 가치 증가와 집행임원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양도제한주식(RSU: Restricted Stock Unit) 등 주식보상제도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다만 지배주주는 주가 상승을 통해 성과를 보상받기 때문에 지배주주에게 주식보상을 해줄 필요는 없다.



셋째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회사 내외부를 망라하여 미리 선정하고 전략에 걸맞는 후보를 선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이사회를 산업의 방향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경쟁기업과 다른 산업의 경영진에게까지 개방하여 기술융합과 흐름을 이사회에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명한 일이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는 이상한 경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분야 사람의 의문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보면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혁신은 다른 분야이 성과를 변형하여 자기 분야에 적용할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고정관념의 틀을 깰 수 있는 다양한 이사진 구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다섯째 이재용 회장도 바뀌어야 한다. 이 회장은 주주의 한 사람이지 오너(소유자)가 아니다. 본인이 모든 결정을 해야한다고 강박에 빠질 이유가 없다. 이사회의 집단지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자율적 의사결정이 활성화되는 조직문화 구축이다. 의사결정에는 항상 리스크가 따르고 이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사전에 강구한다고 할지라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장애를 해결하는 의사결정을 보고하고 결정을 받는 기업에서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장에서 스스로 결정하여 해결하는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의심이 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쓰는 사람 의심하지 말자.”(疑人不用 用人不疑). 이병철 선대회장의 어록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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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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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삼성전자 위기론 중 공감하지 않는 내용은 이렇다. 일부에선 삼성전자의 위기가 기술인력보다는 재무관련 인사가 중용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 주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 사례만봐도 지나친 일반화라고 생각한다. 나델라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나델라는 기술 흐름에 밝은 재무 인력, 재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술 인력이다. 또 일부에선 옛 미래전략실 같은 그룹 콘트럴타워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회사가 주주의 것이 아니라 소수지분을 가진 지배주주의 것이라는 발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주와 이사회, 나아가 집행임원의 관계를 혼동한 것에 불과하다.



회사는 지배주주의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것이다.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은 성장과정에서 정부와 국민의 도움을 받은 기업이다. 반도체산업은 인공지능 기술경쟁에서 국가적으로 핵심이 되는 산업이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보조금 등을 통해 지키려는 산업이다. 필자는 이런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삼성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삼성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를 지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회사와 지배주주를 구분하고 지배주주도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이런 인식을 가진다면 오늘날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여는 시작점이고, 한국기업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숙성의 시간일 것이다.



이용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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