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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양자컴퓨팅, 미·중·유럽 정부가 투자…한국도 인력확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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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는 암호라는 전략적 문제 때문에 미국·중국·유럽 등에서 정부 차원의 투자가 계속 이뤄질 겁니다. 한국도 우수 인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자컴퓨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김정상 미국 듀크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지난 15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과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상온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아이온큐의 공동 창업자로, 전날 대성그룹이 주최한 ‘2024 대성해강사이언스포럼’ 참석 차 방한했다. 2015년 설립된 아이온큐는 양자컴퓨팅 스타트업으로는 최초로 2021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이날 대담에서 에너지 전문가인 김 회장은 “향후 글로벌 시장 주도권은 양자컴퓨팅 기술 확보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에너지 쪽에선 양자컴퓨팅 낙수 효과로 또 다른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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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오른쪽)과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양자컴퓨터의 산업 현황과 한국의 역할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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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따로 인식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0과 1이 중첩된 ‘큐비트(qubit)’에 기반해 작동한다. 이론적으로는 수퍼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일반 컴퓨터보다 1경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 구글은 2019년 수퍼 컴퓨터로 1만년 걸릴 계산을 자사 양자 컴퓨터인 ‘시카모어’로 3분 여 만에 풀었다고 발표했다. 양자컴퓨팅은 특히 기존 암호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미국과 중국이 앞다퉈 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두 전문가는 한국이 양자 기술 인재들을 확보해 아직 시장이 형성 안 된 ‘응용’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인력 싸움”이라며 “시간과 투자가 많이 필요한 하드웨어와 달리, 응용 소프트웨어는 천재 같은 사람이 나와 방법론을 단번에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영훈 회장도 “한국이 소프트웨어 쪽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최근 양자컴퓨터 관련 스타트업이 수백개 생겨난 사실을 언급하며, 국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일 시스템이 갖춰지면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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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퀀텀코리아에서 참관객들이 IBM의 양자컴퓨터 '퀀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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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반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의 중심은 향후 양자컴퓨팅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미국은 1995년부터 양자 기술에 투자해왔고 2018년 전략 기술로 지정하면서 양자법을 제정, 4년간 12억 달러(약 1조6700억원)를 쏟아부었다. 중국은 2013년 국가 기술에 포함했고 2016년 100억 위안(약 1조9200억원)을 투자하는 10개년 연구 개발 계획을 세운 데 이어 2018년에도 5년간 1000억 위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IBM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와 스타트업 등 민간이 혁신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미국과 국가가 첨단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의 대결이다. 2019년 관련 분야 본격 투자에 나선 한국은 지난해 ‘2035년까지 3조원을 투입, 선도국 기술 수준의 85%를 달성하겠다’는 국가 전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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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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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회장은 “원자탄과 양자컴퓨팅 개발이 닮은 데가 있어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 없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중국은 ‘맨해튼 프로젝트(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핵무기 개발 위해 진행한 비밀 계획)’ 같은 체계를 갖추고 인재를 끌어 모아 개발에 나서고 있고, 미국은 민간에 풀어놓고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상 교수는 “미국에서는 양자 기술이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정파를 넘어선 공감대가 있다”라며 “정부가 바뀌어도 양자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데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최근 양자컴퓨팅을 대중 수출통제에 추가한 미국도 기술 규제라는 울타리를 치되 동맹국 간 협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한국도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어가며 민간의 혁신을 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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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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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중국의 첨단기술 분야에 나타나는 세 가지 흐름에 주목했다. ▶미국·유럽 유학파의 중국 복귀 ▶연구의 양적·질적 도약 ▶연구 장비 국산화다. 김 교수는 “미국, 유럽에 활동하던 중국의 많은 수재가 고국으로 돌아가는데, 미국 유수 대학의 교수들까지도 중국으로 가는 데는 개인적 사정 외에 중국의 연구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중국에서 출판하는 첨단 연구 결과를 보면 질과 양에서 모두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올 초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2003~2022년 전 세계 양자 특허 출원의 37%를 중국이 차지해 미국(28%)을 앞질렀다. 김 교수는 “레이저 시스템 등 양자 관련 연구 장비를 중국이 직접 생산하는 역량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상 교수는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점에 대해 “장비 제조 기술을 갖추는 데는 2~3년이면 될 것이고, 응용 사례도 2030년 전까지 나올 가능성이 크다”라며 “국방과 의료 등 전문 분야에서 시작해 응용 분야가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훈 회장은 “원자력이 미래 에너지의 ‘브릿지’ 역할을 하듯, 양자 컴퓨팅을 통해 에너지가 절약되면 여유를 갖고 새 에너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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