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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압도적 풍광 보인다…순례자 6%만 간다는 산티아고 '북쪽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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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⑲ 산티아고 순례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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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루트 중 '북쪽 길'은 산길과 해안 길을 넘나드는 게 특징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산화까지 신은 채 해변을 걷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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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써 가면서까지 꼭 그곳에 가야만 하는 걸까.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린 계속 망설였다. 걷기 위해서라면 지리산 둘레길도 있고, 제주 올레길도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집 앞 북한산 둘레길도 못 가봤는데…. 이유는 길에서 찾기로 하고, 두 달 전 무작정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빌바오에서 출발해 꼬박 한 달을 걸었고, 마침내 스페인의 서쪽 끝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그제야 눈물을 쏟으며 이 길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약 680㎞의 대장정.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나긴 여정을 2회에 걸쳐 전한다. 이번 회는 ‘짐 싸기와 루트 짜기’에 관한 이야기다.



아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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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북쪽길은 우기에 접어든다. 판초 우의는 비 뿐만 아니라 추위를 막아 주는 필수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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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특기는 가방 싸기다. 해외 한 달 살기만 50번 하다 보니, 상황에 필요한 것만 쏙쏙 챙기는 신통한 재주가 생겼다. 이번 여행에도 내 노하우가 총동원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려면 무엇보다 짐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은 본인 체중의 10분의 1 무게로 짐을 꾸리는 게 이상적이라고 한다. 등짐이 무거울수록 발걸음이 더뎌 지고 부상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릎과 발목이 약한 나는 배낭 무게를 5㎏ 이하로 목표를 잡았고, 떠나기 전 6개월간 짐 싸고 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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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순례길처럼 긴 걷기여행에는 가볍고 등이 편한 배낭 최고다. 2·3 견고하고 발의 피로가 적어 해외 순례자들의 부러움을 샀던 'K-등산화'와 보온 물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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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은 계절과 루트 그리고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여름인지 겨울인지’, ‘산길로 갈 건지 평지로 갈 건지, ‘20대 청춘인지, 60대 장년인지’에 따라 챙겨야 할 물건이 다르다. 우리가 택한 루트는 산길이 많았고, 계절도 우기로 접어드는 터라 우천에도 대비해야 했다. 해서 경량 패딩 대신 땀 배출이 용이한 기능성 플리스 재킷을 챙겼다. 바람막이, 판초형 우의, 등산 스틱, 침낭 역시 ‘필수템’이었다.

모든 짐을 덜어내느라 바빴지만, 추위에 약한 나는 보온용품만큼은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충전식 보온 제품은 크고 무겁게 느껴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보온 물주머니를 챙겼다.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 고전적인 방식의 물건인데, 한 달 내내 다른 순례자의 부러움을 샀다.

어느 날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누구의 배낭이 더 가벼운지 경쟁이 붙었는데, 내가 단연 1등이었다. “거의 빈 가방이네” “뭘 들고 다니기는 하는 거냐”며 놀라는 순례자도 있었다. 사실 배낭은 유명 아웃도어 제품 여럿을 두고 고민하다가, 30ℓ짜리 비교적 작은 배낭을 선택했다. 등판이 탄탄하고 다른 제품보다 500g쯤 가벼운 게 선택의 이유였다. 브랜드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순례길에서는 가볍고 편한 게 최고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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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발을 형상화 산티아고 성당 앞의 조형물. 이곳을 다녀간 순례자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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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상골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는 신발도 대충 고를 수 없었다. 매일 20㎞ 이상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어딘가 고장이 난다면, 그건 발이 될 게 분명했다. 걷고 뛰고 적셔 가며 테스트한 트레킹화만 다섯 켤레가 넘는다. 커뮤니티에서 찬양하는 Z사‧O사‧H사의 등산화를 모두 신어 봤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결국 굽이 높고 발목까지 꽉 잡아주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국산 등산화를 골랐는데, 순례길에서 100% 효과를 발휘했다. 험한 산길과 진흙밭을 지나도 발의 피로가 덜하고, 신발 내부가 오염되는 일도 적었다. 절뚝거리며 걷던 많은 순례자가 내 신발에 대해 궁금해했다. ‘K-등산화’가 순례길에서도 통한 셈이다. 신발‧가방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한 분은 이메일로 문의 바란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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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남편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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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길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걷는다. 험한 산길을 넘어온 뒤 만나게 되는 낭만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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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의 정식 명칭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성경 속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지칭하는데, 흔히 ‘카미노’라고 줄여 부른다. 순례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걷기 여행자와 자전거 여행자가 카미노 위에서 마주친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감동과 감격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 사무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44만 명 이상이 카미노를 찾았다.

카미노 루트 중 가장 유명한 건 이른바 스페인 내륙을 관통하는 ‘프랑스 길(약 800㎞)’이다. 평지에 이정표가 촘촘해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식당‧숙소 등의 편의 시설도 많다. 하여 순례자가 어마어마하게 이 길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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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길은 순례자 수가 적어서, 길에서 만난 모두와 친구가 된다. 험한 길 함께 걷는다는 이유 하나로 단단한 동지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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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는 ‘북쪽 길’로 꼬박 한 달을 걸었다. 전체 순례자의 약 6%만이 이 길을 선택한단다. 북쪽 길(약 820㎞)은 스페인 북부 해안에 위치한 바스크‧칸타브리아‧아스투리아스 지방을 관통하는데, 아름답고 화려한 해안선을 곁에 두고 걷는 장점이 크다. 감히 말하건대, 프랑스 길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반면 우리는 ‘북쪽 길’로 꼬박 한 달을 걸었다. 전체 순례자의 약 6%만이 이 길을 선택한단다. 북쪽 길(약 820㎞)은 스페인 북부 해안에 위치한 바스크‧칸타브리아‧아스투리아스 지방을 지나는데, 아름답고 해안선을 따라는 걷는 장점이 크다. 감히 말하건대, 프랑스 길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단점은 산길이 많다는 점이다. 해서 초반의 험난한 바스크 산맥 구간을 건너뛰고 빌바오부터 걷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680㎞의 대장정이다. 카미노를 찾는 한국인은 보통 프랑스 길을 선택한다. 북쪽 길을 걷는 한 달 동안 한국인 순례자를 정말이지 단 한 명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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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의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도착하면 많은 순례자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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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길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와 대화를 할 때면 “왜 프랑스 길 대신 북쪽 길을 선택했어?”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인프라가 열악하고 험한 길이라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으며 순례자들은 단단한 동지애로 뭉친다. 같은 길을 걷고, 목적지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정을 나눈다. 마지막 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광장에 도착했을 때 서로를 향해 보내던 그 힘찬 박수, 그 뜨거운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게는 그 순간이 진정한 카미노의 의미로 다가왔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정보

루트 : 북쪽길(빌바오~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거리 : 총 길이 680㎞

기간 : 31일(9월 24일~10월 24일)

비용 : 230만원(식비·숙박비 등 하루 평균 1인 50유로(약 7만3000원), 항공료 별도)

■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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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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