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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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 논설위원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팔순에 가까운 학교 선배를 만났다. 같은 동아리 출신이기는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처음 보는 분이었다. 내 직업을 확인하고는 대뜸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는데, 이유가 뜻밖이었다. “왜 이재명이를 못처넣는 거야? 그거 하라고 뽑아놨더만.”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재명 처넣을 사람은) 한동훈이밖에 없어. 한동훈은 할 거야.”
국민의힘 지지자가 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분이 검찰과 사법부가 자기편이라고 확신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확신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지난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혐의) 1심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판결은 윤석열 정부의 정적을 사법적으로 제거하려는 정치검찰의 억지 기소를 무책임하게 추인한 ‘자판기 재판’이자 정치 재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판결문은 과도한 유추와 짜깁기, 편파적 법리 해석으로 점철돼 있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이른바 ‘김문기 몰랐다’ 발언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하면서도, 해외출장 중 찍은 ‘사진’에 관한 발언을 ‘행위’에 관한 발언으로 치환시켜 공소장을 변경한(선거법은 ‘모른다’는 인식을 처벌하지 않는다)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대표가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의 일부를 떼 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한 것을, 재판부는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해석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공개한 사진이 골프를 친 날 찍은 것이 아니고, 10명이 단체로 찍은 사진 가운데 고 김문기씨가 포함된 4명만 나오게 잘라서 공개한 것이어서 조작이라고 비판했는데, 이 대표가 하지도 않은 말(골프를 치지 않았다)을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사후적 추론에 따라 발언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금지한 대법원 판례에 위배된다.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의 경우, 검찰은 ‘(공공기관이전특별법의) 의무조항 때문에 용도변경 해줬다는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기소했고,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당시 국감 답변을 자세히 보면, 문제의 ‘의무조항’에 대한 언급은 식품연구원(백현동)이 아니라 도로공사와 토지주택공사(LH) 등 5개 공공기관에 관한 발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토부의 압박(협박)에도 불구하고 성남시가 버텨서 몇 년간 매각이 불발됐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식품연구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공문을 언급하면서 “법률에 의한 요구”에 따라 용도변경을 해줬다고 말했다. 의무조항에 관한 발언은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나온 것이고, 식품연구원 용도변경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검찰과 재판부는 중간을 생략하고 앞뒤를 이어붙여 ‘의무조항 때문에 용도변경해줬다’고 짜깁기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법에 따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공공기관 기존 부지를 매각하려고 했는데, 자연녹지 등으로 용도가 묶여 있어서 성남시의 협조가 필요했다. 아파트 등으로 난개발이 될 것을 우려한 성남시가 공공기관 5곳의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고 몇 년간 버틴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백현동의 경우 알앤디(R&D) 부지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준주거지역으로 절충했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실제로 도로공사 부지에는 성남판교 제2테크노밸리가 들어섰고, 토지주택공사 부지에는 서울대 의생명단지가 들어섰다. 시장으로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노력한 행위가 이렇게 범죄로 취급받아야 할 일인가.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발언도 유죄를 선고했는데, 당시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주재회의와 안전행정부의 이행실적 점검 등을 통해 직무유기로 문책한다는 방침을 하달하는 등 압박 정황이 있었던 사실을 무시한 판결이다. 더구나 ‘협박’이란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인데, 이를 어떻게 허위로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당선자도 아닌 낙선자가, 상대방 비방도 아니고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설령 일부 거짓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선 무효형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범죄인가.
100쪽이 훨씬 넘는 판결문은 너무나 깨알 같은 사실과 법리를 파고들고 있어서 끝까지 읽어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사소한 말실수를 법정에 세운 ‘트집 기소’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대판 예송논쟁’이다. 이런 논쟁이 대체 나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나.
검찰이 19일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이제 이 대표는 8개 사건에서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게 된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가혹한 사법 공격이 가해진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 중에 하나만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와도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이재명 죽이기’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선출되지 않은 사법 엘리트들의 국민 선택권 탈취 시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번 재판이 우리에게 남긴 역사적 질문들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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