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
"유튜버와의 일곱 시간 통화라든지 성향이 의심스러운 종교인과의 대화, 그리고 명태균씨 사건까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많은 논란이 된 것 같은데, 이런 비공식적인 활동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입니까. "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회견에서 나온 기자의 질문이다. 현 정권에 우호적인 매체의 기자란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공식활동 자제나 중단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사적인 활동까지 제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통령 부인이 교류해 온 인물들의 수준이 과연 국민 상식에 부합하느냐는 냉소도 느껴졌다. 윤 대통령도 정곡이 찔렸는지 "앞으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여사가) 어떤 면에서 보면 좀 순진한 면이 있다"는 군색하고 민망한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14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명태균씨.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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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가 '완전 의지하는 상황'이라고 했던 '명태균 선생님'의 면모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그가 가진 정무적 능력과 사람을 홀린다는 언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은 매일 생중계되다시피 한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통해 그의 궤변과 협박, 과장과 안하무인의 태도를 똑똑히 지켜봤다. 구속을 면하기 위해 혈안이 된 피의자의 몸부림임을 고려해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명 선생님'에게 휘둘린 이들이 단지 윤 대통령 부부뿐이 아니라니 이게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수준인가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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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사적 인맥의 면모 드러나
'한남동 라인' 수준은 이와 다를까
국민 눈높이에서 용산 쇄신 불가피
그렇다면 비공식적·사적 교류 차원이 아닌 용산 대통령실 내부 관계자들의 수준은 다를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측과 야당이 '한남동 라인'이라고 부르는 이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명 선생님' 덕분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 대통령님께서 여사를 너무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우리 여사님 진짜 경국지색(傾國之色·임금이 혹해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아닙니까. 나이 차이도 열 살이 넘고, 어떻게 안 좋아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해 가을 저녁 자리에서 김 여사와 가깝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이 말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김 여사 문제가 왜 제어가 안 되느냐'는 질문에 이런 누추한 답변을 듣게 될지는 몰랐다.
한남동 라인과 관련해선 지난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믿기 힘들 정도의 흉흉한 이야기도 돌았다. 인수위에서 일했던 능력 있고 인품 훌륭한 참모가 갑자기 잘려나갔는데, 그 이유를 둘러싼 소문이 가관이었다. 해당 참모가 동료와의 대화에서 윤 대통령 부부의 귀에 거슬릴 만한 얘기를 했는데, 상대방이 이 대화를 몰래 녹음해 직보하면서 하루아침에 인수위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의 조직이 과연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과거 대통령실에 몸담았던 한 인사의 고백이 실감난다. "김 여사 문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물어볼 수 없었다. 잘못 물어봐 찍히면 날아간다는 생각을 다들 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윤 대통령이 말했던 '악마화'나 '침소봉대', 정치 공작의 결과일 뿐일까.
현재 윤 대통령은 칼날 위에 서 있다.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겨우 20%를 회복했다고 기뻐해야 하는 현실이 여권이 직면한 현주소다. 그런 면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약속한 '쇄신'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능력 있는 참모들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리고 승부를 걸어도 반전이 가능할까 말까다. 사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궤적과 선구안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의·정 갈등 국면에서 대통령에게 충언했던 참모들이 오히려 책임을 뒤집어쓰고 옷을 벗었다. 대기업까지 탐을 내는 천하의 인재들이 분명치 않은 이유와 소문 속에서 용산을 등졌고, 그들의 자리는 수상한 사람들로 대체됐다. 이번이야말로 쇄신 인선의 기준은 윤 대통령 부부의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져야 한다. 참모들을 보면 지도자가 보이고, 교류하는 주변 사람들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이다.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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