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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직설]한국인처럼 일하는 소망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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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손으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지난 8일 산업재해로 사망한 강태완씨(32·몽골 이름 타이왕)에 대해 지난 몇년간 한겨레에 연재된 다섯 편의 기사를 순서대로 읽던 중 몇번이나 그랬다.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아온 그가 합법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몽골로 자진출국했다가 귀국하는 여정을 담은 연재기사였다. 당사자들이 일일이 청원하고 읍소하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거쳐야 조금씩 움직이는 법무부와, 매번 짧은 길을 멀리 돌아가게 만드는 일선 행정의 행태에 읽는 내내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흠칫 놀랐다. 태완씨가 얼마 전 사망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라서다. 어떻게든 빨리 자격을 얻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기사를 따라가다 그 점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그가 평생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 ‘미등록’ 문제는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풀려갔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일자리는 그를 죽였다. 입사 후 8개월 만에.

그에게 취업은 영주권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외국인’ 자격을 얻고, 주위 여러 사람의 도움과 조언으로 거주 비자 취득이 가능한 전주의 특수장비차량 생산 기업을 찾아 입사하게 됐을 때 그는 비로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곧 보통의 한국인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그 직장은 그에게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주었고, 소속감을 주었고, 수백억 국가 예산이 들어간 개발사업의 일원이라는 책임감도 주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은 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전한 여러 기사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언급됐지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진 의문이다. 기업이 책임 회피할 방법은 많고, 고용노동부는 늘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사업주 개인을 꼭 형사처벌해야 하느냐”는 사회적 반감이다. 최근에도 처벌 수준을 낮추고 사업주 처벌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 보도돼왔다. 법 시행 이후로 중대재해가 줄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익히 알고는 있을 것이다. 입법 당시 발의자들이 사업주의 처벌을 중심에 둔 것은 그렇게 해야만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현장에 명백한 위험 요인이 있어도 중간관리자는 이를 없애기보다 이윤을 더 내는 결정을 해야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하청 현장의 위험은 원청의 의사결정에 닿지 못한다. 이런 고질적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현장의 위험을 그대로 두는 것은 사업주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도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가 줄지 않은 것은 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진짜 재편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태완씨의 소원 중 하나가 어떻게든 이뤄지기는 했다. 보통 한국인들처럼 일하고 싶다는 소원이다. 일하다 죽을 위험 속에 있기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니까. 위험이 지방으로, 하청기업으로, 저학력 일자리로 몰려 있어 겉에서 잘 안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도 하나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업주들의 편안한 생활이 몇배, 몇십배 중요한 나라라는 것이다. 태완씨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나라, 이 대한민국은.

경향신문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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