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왕국인 대치동엔 ‘학사’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험생들의 식사와 숙박, 생활 관리까지 책임지는 곳. 대치동에 이런 학사가 수십 곳 있습니다. 올해로 20년 된 성원학사에선 2024 수능 전국 수석이 배출됐는데, 올해 고교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줬답니다. 입시 경쟁의 생생한 현장, 그 24시를 보여드립니다.
성원학사 수험생들은 일어나면 책상 카메라에 얼굴을 보여야 한다. 평소엔 닫아 놓는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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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여러분들은 자리에서 카메라를 여십시오.”
오전 6시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성원학사에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자던 수험생들이 몸을 일으켜 책상에 붙은 작은 문을 열더니 카메라에 얼굴을 내보인다. 박옥임(64) 원장이 모니터로 보며 기상 여부를 체크한다.
이어 식사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후드 모자와 반바지 차림의 남학생이 첫 손님. 접시에 밥과 두부, 나물 등을 담은 뒤 주방 이모가 배식하는 오리훈제구이를 건네받는다. 수험생들이 좋아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메뉴.
오전 7시, 박 원장의 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기상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어린 양’을 찾아 나설 시간. 2층으로 올라가 호실마다 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부른다. 한 방에서 반응이 없자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가 학생을 일으킨다. 상습 지각으로 학원에서 ‘근신’ 처분을 받은 학생. 박 원장은 “침대로 올라가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리거나 아예 몸을 일으켜 벽에 북어처럼 세우기도 한다”며 웃는다.
오늘도 이어지는 아웅다웅. “아들 엄마 살려줘.” “어제 늦게 잤니? 조금만 더 잘 거야?” “일어나자. 근신 또 받으면 학원 쫓겨날지 모르잖아.”
박 원장이 3, 4층까지 훑는 동안 국민체조 방송이 나왔다. “운동을 안 하더라도 계속 방송이 나오면 자는 애들한테 자극을 주거든요. 밥 먹고 들어가서 다시 자는 애도 있어 계속 확인해야 해요.”
수험생들 사이에서 ‘핸드폰 교도소’ 라 불리는 성원학사 1층 휴대전화 보관소.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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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수능에서 표준점수 449점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이동건(20)씨도 지난해 이곳에서 공부했다. 고3 때 대구 경신고에서 내신 1.01등급을 받고 수시모집으로 성균관대 의대에 합격했는데,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재수를 택했었다. 이씨는 “6월 모의고사 일주일 전 높은 표준점수를 노리고 과학탐구 선택과목을 화학 II로 바꿨는데, 학사에서 관리를 잘 해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 전국 수석 학생의 부모가 보내온 감사 화분.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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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능이었던 지난해 수능에서 이씨는 생명과학 II 한 문제만 틀렸다. 국어 150, 수학 148, 화학 II 80, 생명과학 II 71로 역대급 표준점수를 받았다. 수능 성적 발표 날, 서울대 의대 수시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는데 상관없었다.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어서 정시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학사에서 짐을 빼던 날 이씨는 박 원장을 꼭 끌어안았다.
7년 전 학사에 살며 재수하던 김모군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그는 수시모집 전형으로 부산대와 경상대 의대를 지원했었다. 그런데 수능을 보고 가채점을 해보더니 지원한 의대의 수능 최저등급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울해 했다. 좌절한 김군은 학사에 틀어박힌 채 수시 2차 전형인 면접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전남 광양에서 엄마가 찾아와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지난달 25일 박옥임씨가 수험생들을 깨우고 있다. 심석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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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부산대 시험 날짜가 지나버렸다. 남은 건 경상대 의대뿐. 2차 전형 전날 박 원장이 방으로 찾아갔다. “일단 면접을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안 보면 기회도 없잖아. 내 말이 맞는 건지 판단은 네가 해야 해. 당사자는 너야.”
김군은 고민하다 마음을 바꿨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고속버스를 타러 갔는데 웬걸, 학사에 주민등록증을 두고 간 게 아닌가.
“급하게 택시를 불렀죠. 기사한테 주민등록증을 주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가달라고 했어요. 사람이 아니고 주민등록증이 타고 간 거죠.” 다행히 김군은 신분증을 들고 시험장에 갔다.
며칠 후 수능 성적표가 나왔는데 가채점 때와 달리 의대 수능 최저등급을 충족하는 결과가 나왔다. 김군은 경상대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얘가 짐을 빼러 학사에 왔는데, 민망한지 빼빼로 한 뭉치를 주더라고요. 자기가 공부가 잘 안 될 때면 매일 먹던 거라면서요.”
성원학사 식당은 민속집처럼 꾸며놨다. 조선시대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기 전 주막을 들르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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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
“‘아이들이 강남가 유흥가 못 지나가게 해달라’는 엄마들의 요구로 이것까지 생겼다”
성원학사에만 있는 특별한 시스템이 있다고 합니다. N수생들이 공부에 올인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이곳의 이야기를 더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통해 구독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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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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