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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신진서랑 붙는다고? 왕싱하오는 좌절했고 딩하오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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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삼성화재배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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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가 열리는 경기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 캠퍼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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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특이한 세계대회다. 다른 바둑 대회와 달리 본선 32강전부터 결승전까지 한 장소에서 쉬지 않고 진행된다. 올해 대회의 경우 지난 11일 개막해 오는 21일(또는 22일) 폐막한다. 장소는 경기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 캠퍼스. 평소에는 기업·기관 등이 연수원으로 활용하는 이곳이 삼성화재배 기간에는 바둑대회장이자 대회 관계자 합숙소로 변신한다. 출전 선수는 물론이고, 각국 기원과 대회 관계자, 취재진, 한국 국가대표팀 등이 최대 12일간 같이 먹고 자며 생활한다. 프로기사 중에 유난히 삼성화재배를 좋아하는 선수가 많은 이유도, 선수들 사이에 숱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것도 삼성화재배의 독특한 운영방식 덕분이다. 대회 반환점을 돈 17일, 2024 삼성화재배 이모저모를 모았다.



신진서에 울고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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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32강전 대진 추첨식 장면. 당대 1인자 신진서 9단이 6번을 뽑자 중국 선수단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졌다. 그러나 한 명은 웃지 못했다. 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군 주인공은 왕싱하오 9단. 신진서가 지목한 32강 상대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왕싱하오는 신진서에 져 1회전 탈락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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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1인자 신진서. 중국 선수에게도 ‘신진서’는 공포의 이름이다. 삼성화재배는 같은 나라 선수들의 대진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다음 라운드 대진을 추첨해서 정한다. 하여 대진 추첨식 현장은 매번 탄성과 한숨이 교차한다.

지난 11일 개막식 직후 열린 32강전 대진 추첨식. 신진서가 왕싱하오를 32강 상대로 뽑자 개막식장이 크게 술렁였다. 하필이면 이번 대회 신진서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지목됐던 왕싱하오가 32강 상대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당사자 왕싱하오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숙였고, 다른 중국 선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15일 8강 대진 추첨식에선 딩하오가 신진서를 뽑았다. 8강 상대가 신진서로 정해지자 딩하오는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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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16강 대진 추첨에서 7번을 뽑은 딩하오 9단. 신진서가 먼저 8번을 뽑았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진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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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삼성화재배는 8강까지 중국 선수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본선 32강에 16명이 진출했을뿐더러 8강에 7명이나 올랐다. 그러나 나머지 8강 한 자리에 신진서가 있다. 중국 차세대 선두주자 왕싱하오와 한때 세계 바둑을 호령했던 커제가 신진서를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일당백’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밥 더 먹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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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삼성화재배 기간에 제공되는 식사. 이날 메뉴는 중식이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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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사이에서 삼성화재배는 ‘맛집’으로 통한다. 하루 세끼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는데, 밥이 맛있어 다들 식사시간을 기다린다. 선수 대부분이 20대 청년이어서 삼성화재도 선수들 식사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경기는 매일 정오에 시작한다. 하여 점심시간이 애매하다. 원래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식사시간인데, 경기 시간을 고려해 30분 앞당겼다. 메뉴도 특식을 제공한다. 가령 일반식이 ‘돼지고기 불고기’면 삼성화재배 특식은 ‘소고기 불고기’다. 취재진도 같은 시간 같은 메뉴로 식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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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실에서 연구 중인 국가대표 선수들. 삼성화재배 경기가 열리기 전인 오전 이른 시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하루종일 모여 공부한다. 홍민표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삼성화재의 배려로 대회 기간 동안 국가대표팀 훈련을 대회장에서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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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소불고기가 점심으로 나온 날, 중국 한이저우가 ‘두 뚝배기’를 순삭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른 선수도 대부분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14일 16강에서 탈락한 최정은 16일 현재 집에 안 돌아가고 국가대표 선수단과 함께 검토실에서 공동 연구 중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밥 더 먹고 싶어서요”라며 활짝 웃었다.

탕웨이싱은 삼성화재배 성적이 유난히 좋은 중국 선수다. 올해는 예선에서 탈락해 고양에서 볼 수 없지만, 역대 삼성화재배에서 4번 결승에 올라 2번(2013, 2019년) 우승했다. 탕웨이싱은 삼성화재배 성적이 좋은 이유를 “밥을 더 먹고 싶어 악착같이 뒀다”고 말한 바 있다.



밤마다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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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체육관에서 운동 중인 삼성화재배 출전 선수들. 공을 잡은 선수가 중국 판인이고, 가운데 흰색 티셔츠 입은 선수가 셰커고, 빨간색 농구복을 입은 선수가 구쯔하오다. 사진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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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글로벌 캠퍼스는 낮에는 절간처럼 고요하다. 대국장은 일절 출입이 통제되며 검토실에서도 바둑알 놓는 소리만 울린다. 밤에는 다르다. 환호가 터지고 까르륵 웃음소리가 연수원을 울린다. 선수들이 밤마다 운동하는 소리다. 연수원 건물에 체육관이 있는데, 각국 선수들이 거의 다 모인다. 종목도 다양하다. 농구, 족구, 탁구, 당구에 테이블축구도 있다.

족구는 주로 한국 선수가 즐긴다. 최정이 남자 선수들 사이에 끼어 족구를 하는데, 본인 주장처럼 제법 공을 찬다. 농구는 한국과 중국 선수들이 함께 어울린다. 구쯔하오는 중국에서 농구복까지 챙겨 왔다. 그러나 본선 첫 경기에서 최정에 패해 탈락하면서 12일 하루만 농구복을 입어보고 다음 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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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테이블축구를 즐기는 중국 선수단.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왕레이 선수단장, 딩하오, 쉬자양, 진위청.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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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축구는 중국 선수단 차지다. 왕레이 선수단장부터 커제·딩하오·진위청·쉬자양 등 거의 모든 선수가 테이블축구를 즐긴다. 탁구는 한국과 중국 선수 모두에 인기다. 한국 선수 중에선 설현준, 중국 선수 중에선 왕싱하오의 실력이 돋보인다. 신진서도 라켓을 잡았지만,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당이페이와 롄샤오는 구기 종목에 흥미가 없는 듯 열심히 러닝머신만 탄다. 저녁마다 저녁 운동회를 지켜본 결과, 올해 출전 선수 최고의 스포츠맨은 셰커다. 농구, 당구, 탁구 안 끼는 종목이 없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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