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높아지면 충동성-폭력성 증가
정신 질환-감염병 확산 등 치명적
기후위기 현실적 대응책 마련해야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김재경 옮김/384쪽·2만2000원·추수밭
올해 9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호스슈비치의 주민들이 허리케인 ‘헐린’으로 완전히 파괴된 집을 뒤로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간은 이 같은 자연 재난이 잦아지면서 우리의 정신, 몸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호스슈비치=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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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장의 기온이 높아질수록 투수의 고의적인 사구(死球) 비율도 늘어난다?’
2011년 미국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은 약 6만 건에 달하는 메이저리그 경기 자료를 분석해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심리 작용의 기제를 들여다봤다. 연구진이 흥미를 느낀 부분은 투수가 타석에 선 상대편 타자를 맞히는 사구다.
상대팀 투수의 고의성을 판단할 때는 아무래도 주관적 해석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때 영향을 끼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뭘까? 연구진은 팀의 승패, 경기 결과도 아닌 기온이 가장 결정적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예를 들어 섭씨 13도인 날에는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보복할 확률이 22%인데 섭씨 35도인 날에는 보복 확률이 약 27%까지 오른다는 것. 연구진은 “열기는 도발에 대한 반응을 강화하고, 보복 행위를 예고한다”고 말한다.
야구의 사구 얘기는 흥미로운 얘깃거리 정도로 그칠지 모르겠다. 그런데 기후가 일상 속 우리의 정신 건강은 물론이고 몸 상태, 신경질환, 질병 감염 여부도 좌우한다면 그냥 흘려듣기 어려워진다.
저자는 내 삶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후 위기가 우리 몸, 일상, 사회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내밀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다소 멀게 느껴지는 지구 환경 변화가 아니라 기후로 인한 자신의 몸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실제로 기온이 오르면 몸에선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는 데 기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양이 감소하면 개인의 충동성이 늘어나는데 폭력성과 보복행위 등 증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
책은 방대한 데이터를 예로 들며 여러 위험 사례를 소개한다. 산불, 허리케인 등 대규모 기후 재난을 겪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신경, 정신 질환을 겪을 확률이 높았다. 기온 상승으로 활동 폭이 커진 동물들이 대규모 감염병을 인간 사회에도 전파시킨다. 매일같이 수영하던 호수에선 수온 상승으로 ‘뇌를 먹는 아메바’인 ‘N. 파울러리’가 깨어나며 수막뇌염으로 숨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기후 변화는 전 사회적 위기 상황도 불러온다. 경제학자 매슈 랜슨은 주변 온도가 섭씨 2도 상승할 경우 폭력범죄 발생 비율이 약 3%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살인 2만여 건, 강간 18만 건, 가정폭행 12만 건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 재난이라는 괴물이 이미 우리 몸과 사회를 좀먹기 시작했다”며 “우린 이 현실을 무시무시하게 느껴야만 한다”고 경고한다.
과거 대통령 재임 시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하며 ‘기후 위기는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내년 1월 20일 백악관에 재입성한다. 오늘날 세계의 소수 정치인, 기업가들의 의사에 따라 전 지구적 기후 위기 대응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독자들은 책을 읽고 과도한 걱정이나 무력감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책은 당신을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 손을 꼭 붙잡아 달라”고 호소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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