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대나 스타프 지음·주민아 옮김·최재천 감수/368쪽·2만2000원·위즈덤하우스
참새목에 속하는 ‘천인조’는 ‘긴꼬리단풍조’의 둥지에 기생해 자란다. 남의 둥지 안에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탁란’을 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이 두 종의 성체는 전혀 다르지만, 새끼 때만큼은 입이 닮았다. 새끼 천인조가 부모 긴꼬리단풍조를 속여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입이 같은 무늬로 진화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방 전략’을 쓰는 아기 새를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신간은 어린 동물들의 특성과 성장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무척추동물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해양 생물학자다. 그는 “모든 종의 어린 구성원은 우리 지구가 펼치는 드라마에 왕성하고 활발하게 참여하는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아메리카 대왕 오징어’로 알려진 훔볼트오징어의 알 덩어리를 기적적으로 발견한 경험을 한 이후 어린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책에 따르면 어린 생명체는 성체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독립적 개체다. 단지 성체가 되지 못한 미성숙한 동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기 캥거루에게는 어미의 육아낭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강한 팔다리가 있다. 랑구르 원숭이는 태어날 때는 어미의 주의를 끄는 오렌지색이지만, 자란 뒤에는 천적의 눈에 덜 띄도록 흑백의 모습을 갖춘다.
작디작지만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도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강인함도 있다. 청개구리 알 무리는 포식자의 위협이 느껴지면 보다 일찍 부화해 ‘도망’치고, 얼룩상어 배아는 굶주린 포식자를 감지하면 얼어붙은 듯 정지한 채 숨을 참는다.
“새끼 한 마리 한 마리는 세상이라는 천을 뚫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작은 바늘과 같다.” 저자는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동물들의 치열함에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알 또는 태아에서 성체가 되기까지 온갖 위협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시절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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