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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말은 잘하는데 글은 자신 없다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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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신문 칼럼을 자주 읽으면 글의 뼈대와 흐름이 보인다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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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상통한다. 누군가는 반문할 터. 글은 잘 쓰는데 말은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이건 이른바 숭문어눌(崇文語訥)의 전통적 습속과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글쓰기는 높이 쳐주고 대우하는 반면 말하기는 낮잡고 하찮게 치부한 것 말이다. 그러나 말을 아끼거나 신중히 가려서 하는 것과 말을 잘 못하는 경우는 구별된다.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요즘은 말은 곧잘 하는데 글은 자신 없다는 호소가 더 많은 듯하다. 말을 잘한다는 것도 사실은 따져볼 문제다. 쓸데없는 내용이나 하나 마나 한 이야기, 혹은 입심과 수다의 차원을, 말을 잘하는 것으로 오해·왜곡·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쨌든 진정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원칙적으로 글도 잘 쓰게 마련이며 그 역(逆)도 참이다.

흔히들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고 인정받을 것인가. 결국은 말과 글이다. 우선 글의 경우 A4 한 장에 자신의 생각·느낌·주장을 담을 수 있게끔 단련해야 한다. 내용이 길고 겹칠 땐 정리⸱요약해 압축해야 하고, 짧다 싶으면 사례·비유·대입 등의 기법으로 보태고 늘려야 한다. 알차고 단단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적어도 심각하고 고상한 문학이 아닌 한 그렇다.

그런데 A4를 첨부 메일로 보내고 마무리하면 상대가 그것으로 만족하던가? 대부분은 ‘파워포인트(PPT)’라는 놈이 또 기다리고 있다. 말이 등장할 차례. 이때 PPT에 주연을 맡기고 정작 발표자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스테이플러 박힌 출력물을 연신 넘기는 모습을 본다. 주객전도이자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결론은 파워포인트 속 내용을 숙지하고 입에 붙는 음성 언어로 자연스럽게 전달해야 비로소 말과 글로 이루어진 ‘표현’이 완성되는 셈이다. 표현되지 못하는 정보와 지식은 공허이자 맹목이다.

글 잘 쓰는 비결은 무엇이며 말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글쓰기는 송나라 때 문호인 구양수(1007~1072)가 진즉 일갈했다. “다독, 다작, 다상량.”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라. 멋지다! 그러나 현대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다독, 문제는 책과 접할 여유 시간이 없으며 책 보기를 꺼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글은 잘 쓰고 싶고…. 신문 칼럼 읽기가 대안이다. 유명 저널리스트들 글을 내용과 함께 구조를 익히는 습관을 들이자. 글쓰기의 두려움은 소위 ‘기댈 언덕’이 부재하다는 것. 글의 뼈대와 흐름을 눈여겨보는 훈련이 값지다는 생각이다.

다작은 “자신의 인정 욕망을 건드려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이 박히게 되는 글, 즉 활자화의 경험을 맛보라는 것. 글쓰기의 도약점은 “매체에 인쇄된 나의 글”을 보는 순간부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박한 잡지에 생활 에세이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긴 책이 별건가? 이런 조각 글이 하나 둘 모인 게 책이다.

다상량은 짐작하고 헤아리는 것, 즉 생각 근육 키우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인물과 상황에 촉수를 곧추세워 관찰력과 감수성을 벼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일이다.

다음 차례는 말하기다. 여기선 공적인 말하기, 즉 남들 앞에서의 스피치를 일컫는다. 말 잘하는 사람은 늘 말할 거리를 궁리한다. 세 가지로 뭉뚱그리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다. 말하기 능력자들은 또한, 흥미롭고 인상적인 스토리를 즐기고 그것을 반드시 후에 써먹는다. 이야기가 나온 배경, 테마를 이끄는 대상, 유다른 분위기를 한사코 캐내 파악한다. 적극 배울 일이다. 이런 말이 있다. “멋지고 근사한 말은 살아 숨 쉬는 글과 같다.”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은 그의 글쓰기 책 ‘On Writing’에서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글 속에 말의 리듬적 요소를 반드시 고려하라는 주문이다. 물 흐르듯 매끄럽게 말하게 되게끔 써야 잘 쓴 글이다. 그리고 말하기는 근원적으로 노 텍스트(No Text)임을 기억하자. 말할 원고를 글로 써놓고 죽죽 읽거나 달달 외워 전하는 건 모양 빠지는 일이다. “원고 없이 잘 말할 수 있다!” 그 황홀한 도전(Challenge)에 감연히 나서 버릇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정적 기회(Chance)가 올 테고, 언젠가 화법과 신체 언어(보디랭귀지)에 벼락 같은 변화(Change)가 미소 지으리라. 못하겠다면 유창하고 세련된 말하기는 난망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빼어난 말솜씨·글재주에 앞서 몸과 맘이 건강하고 세상 물정을 옳게 보는 역량이다. 서양의 에토스(Ethos)와 맞닿는다. 성격·기질·특성 내지는 윤리·도덕심. 곧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말하기’가 완성된다는 뜻. 두말할 나위 없이 이게 가장 중요하다.

[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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