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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장기 불황 우려 커지는 中, ‘잃어버린 30년’ 탈출하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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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처지가 뒤바뀌고 있다.

1980년대 버블경제가 터진 후 부진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잃어버린 30년’이란 오명을 달고 살았던 일본 경제는 지난해부터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반면,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지구촌 경제를 이끌던 중국은 깊은 침체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잃어버린 30년’이란 용어를 중국 경제의 수식어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중국 당국도 손을 놓지 않고 적극 대응을 하고 있지만 구조적 부진의 성격이 강해 쉽게 반등의 기회를 마련해 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중·일 양국의 상황이 역전된 것일까.



中, 잃어버린 30년 길 답습할까
한때 전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중국의 처지는 다소 초라하다. 고공행진을 하던 경제 성장률은 이제 한 해 5% 달성도 버거운 처지다. 성장보다는 침체를 일단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일 정도로 각종 경제지표는 우울하기 짝이 없다.

현 중국 경제의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이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고생을 하다 이제야 탈출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정반대의 상황에 빠져 씨름을 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0월 18일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 전망치를 웃돈 것이지만, 올 2분기 시작된 성장률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간단치 않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정했는데, 2분기에 이어 3분기마저 성장률이 더 떨어지면서 올해 목표 달성 장담이 여의치 않게 됐다. 특히 3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4.5%)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가운데 물가 문제 해결도 난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2분기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5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이후 최장기간 지속이다.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눠 계산하는 GDP 디플레이터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는데, 디플레이터가 하락한다는 것은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4% 올라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근원 CPI(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0.1%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전 달의 0.3% 상승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다. 게다가 9월 CPI는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물론 중국 경제 매체들의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였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지표 기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가 통계국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9월에는 여러 생산·수요 지표가 호전됐고 시장 기대가 개선돼 경제 호전을 이끄는 긍정적 요인이 늘었다”고 자평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월 산업 생산과 소매 판매가 증가한 것을 염두에 둔 설명이었다. 실제 9월 소비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소매판매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2% 증가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 2.5%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며 전월 증가율(2.1%)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소매판매 증가율이 3%대로 올라선 것은 5월(3.7%) 이후 4개월 만이다.

9월 산업생산 역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4% 증가했다. 이 역시 시장 전망치(4.6%)와 전월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산업생산과 상관관계가 깊은 중국의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의 경우 전월(-1.8%)에 이어 또 다시 하락한 –2.8%를 기록하며 2016년 이후 최장기간인 24개월 연속 하락했다. 산업생산이 증가하면 중간재와 원자재의 수요도 증가해 생산자물가도 오르게 된다. 이 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산업생산의 방향 전환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또 9월 소매판매 활동이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바닥권 수준이다. 때문에 중국 당국의 설명대로 일부 지표가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더라도, 전체 경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견해가 많다.

블룸버그는 현 중국 경제 상황에 대해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수십 년’ 시기에 볼 수 있었던 사이클”이라고 분석했다.

▶ 부동산 문제·미중갈등에 탈출구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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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외곽에서 대규모 주택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중국에서는 9000만 채 이상의 주택이 비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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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 같은 경제 침체의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이나 돼, 이를 해결하지 않고 경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중국내 부동산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당국이 부동산 시장을 옥죄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고속 성장하던 중국 경제 흐름을 타고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호황을 누리던 부동산 업계는 코로나19상황을 맞아 변곡점에 놓였다. 그 전부터 쌓인 불황의 조짐이 본격화하면서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인데, 중국 내 대형 부동산 업체들조차 자금난에 시달리며 분양한 아파트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시장이 흔들릴때 마다 적극적 자금 지원을 통해 시장안정화를 꾀하곤 했지만 당시엔 달랐다. 오히려 시장 정화의 기회로 삼아 업체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게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고, 대마불사가 무색할 정도로 헝다 등 중국내 주요 부동산 회사들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부동산 문제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 당국이 자금난에 빠진 업체들을 돕기 위해 우리 돈 약 340조원을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중의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중국 경제 부진에 한몫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관세 부가 조치 등 미국의 견제는 중국 테크 기업들의 경쟁력을 자꾸 약화시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아직까지는 큰 타격이 없어 보이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첨단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중국 혼자서 글로벌 흐름을 앞질러 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중국을 향한 견제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중 갈등 구조가 지속되는 한 중국이 글로벌 운신 폭을 넓히기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인구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은 중국 경제의 또 다른 불안요인이다. 중국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인구 감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22년 61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감소 현상이 나타난 충격파가 여전하다. 여기에 부동산 상황 못지 않게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가 국가의 발목을 잡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8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18.8%로 올해 들어 가장 높았다. 하나같이 묘수가 보이지 않는 난제들이다.

▶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규모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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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우울하기 짝이 없고, 이런 상황이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인정치 않고 있다. 오히려 연초 내세운 GDP 5%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불안은 최근 잇따라 내놓은 굵직한 정책 행보에서 엿볼 수 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더 큰 실기를 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중국 당국은 지난 9월부터 금리, 지급준비율, 주택담보대출금리 인하부터 장기유동성 공급,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등의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한 여러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또 10월에는 지방정부 부채 문제 해소와 저소득층 지원 등을 위해 총 2조 7000억위안(약 52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 방안을 발표했고, 주요 국유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특별국채도 발행한다. 증시 부양을 위해선 적격 증권사와 펀드, 보험회사를 지원하는 ‘증권, 펀드, 보험회사 스와프 퍼실리티’를 설립하기로 했다. 초기 운영규모는 5000억위안(약 96조원 규모)이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앞서 내놓은 부동산 지원책과 마찬가지 분위기다. 지난 10월 9일 중국 당국이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직후 상하이·선전 증시는 오히려 급락했다.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벤치마크 CSI300 지수는 2020년 2월 이후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다. 선전종합지수도 같은 날 8.2% 급락 마감했는데, 1997년 5월 이후 27년 만에 최대 낙폭으로 분석됐다.

중국 내 디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어둡기 짝이 없다. BNP파리바, 블룸버그이코노믹스, BCA리서츠 등 다수의 글로벌 기관들은 디플레이션 상황이 내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는 “중국이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 섰던 1990년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이 현 경제 침체 위기를 넘기 위해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지원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중국 당국은 한화 768조원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 불황은 인구 구조 악화와 다년간의 부채 축소 추세, 공급망 리스크 완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면서 “최근의 부양책으로 이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융딩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은 “중국의 현재 경제 규모가 과거를 능가하기 때문에 새 부양책 역시 2008년 규모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 불황 터널 빠져 나오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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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버블 경제가 터진 후 추락하기 시작한 일본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만 해도 ‘잃어버린 30년’이란 족쇄에 묶여 있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일시적 호황이 나타난 적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만성적 우울’ 그 자체였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후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가 꿈틀대더니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올해 2월 22일 닛케이 225는 종가기준 3만9098.68을 기록하며 역사적 고점(3만 8915.87)을 돌파했다. 현재 닛케이225는 버블시대의 고점보다 1000포인트 위인 4만선을 기점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증시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난 3월 19일 일본 중앙은행은 17년 만에 전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저금리 기조를 탈피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디플레이션을 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는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2022년 4월 이후 일본은행 목표치인 2%를 달성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드디어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란 침체의 긴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일본이 부활의 조짐을 보일 당시 인터뷰를 했던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활기가 도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처럼 일본이 경제 상황이 확 달라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먼저 일본 기업들이 부활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시바, 샤프, 산요 등 잃어버린 30년 기간에 사라져버린 일본 주요 기업들도 있지만, 토요타·소니·아지노모토 등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 기업들은 침체 기간 동안 회사 체질을 바꾸는 혁신 작업을 통해 재탄생했다. 이들 기업의 성공이 일본 경제 변화의 분위기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 4차산업 흐름타고 반도체 부활까지 노린다

소니의 사례를 보면, 휴대용 음악기기인 워크맨으로 세상을 흔들었던 소니는 2000년대 초반 MP3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추락했다. 이동하면서 듣는 음악의 형태가 테이프에서 파일로 전환되는 기술적 흐름을 놓친 것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력이 무색할 정도로 워크맨에 취해 있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이런 소니는 절치부심, 침체 기간 동안 회사의 체질을 과감히 바꾸고 시장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생존을 모색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 일본의 명성이었던 ‘기술력’을 갈고 닦는 데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은 한 분야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 현재 소니의 실적이다. 소니가 추락했을 당시 영업이익은 약 340억엔(2013년)에 불과했지만, 현재 소니의 영업이익은 1조엔대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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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그룹은 스마트폰 카메라, 자율주행 등에 쓰이는 반도체 화상 센서 증산 등을 위해 2021년부터 2026년까지 1조 6000억엔(13조 76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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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니는 현재 전자제품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 영상 음악 개임 등을 다루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또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 카메라에 필수인 이미지 센서 기술의 강자다. 현재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소니는 벌써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로봇 우주산업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사업에 전방위적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 식품기업인 아지노모토도 빠지지 않는다. 자사 제품의 주 원료인 아미노산 활용법을 고민하다 반도체 분야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자체 아미노산 활용 기술로 절연 필름을 개발한 것인데, 현재 PC 대부분에 부품으로 들어간다. 스마트폰 CPU(중앙처리장치)에도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아지노모토는 실적은 크게 증가했고, 주가는 계속 우상향이다.

여기에 더해 운때도 맞았다. 산업적 변화와 미·중 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이 일본에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먼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기차 등 빠르게 이뤄지는 4차 산업의 변화로 일본의 대표기업들 중 하나인 종합상사들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얻었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각종 자원부터 IT부품까지 돈 되는 사업은 무엇이든 다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이들이 주력하던 자원 관련 사업이 4차 산업 변화의 수혜를 입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부터 불기 시작한 전기차 열풍에 필수 원자재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고, 여기에 미리 투자했던 종합상사들이 큰 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를 미리 알아채고 먼저 움직인 투자자가 있다. 바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되던 2020년 8월 말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일본의 5대 종합상사 지분을 5%씩 취득했다고 공시를 했을 때만 해도 세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워런버핏은 투자를 한 이후 미쓰비시·이토추 등 일본 주요 상사들이 눈에 띄는 실적을 내놓았고 주가는 크게 올랐다. 워런 버핏은 3년여 만에 세 자리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미·중 갈등의 수혜자인 것도 일본 부활에 있어 무시 못할 요소다.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였지만 삼성 등에 밀린 뒤 일본 내 반도체 산업은 거의 전멸하다 시피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 올라타면서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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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인 대만 TSMC의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제1공장.<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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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례가 AI시대를 맞아 더 몸값이 커진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일본에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이다. TSMC는 미국이 짜놓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기업이다. 이 기업의 해외 공장이 일본에 들어섰다는 것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일본의 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올해 말부터 실제 생산에 들어가게 되는데, 일본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자국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토요타·소니·소프트뱅크·덴소·NTT·NEC·키오시아·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8곳이 뭉쳐서 라피더스라는 회사를 출범시켰다. 일본 정부도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잃어버린 30년을 탈피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의 부활과 관련한 최근의 정책적 노력은 고 아베 전 총리가 추진했던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이다. 일본판 양적완화로 그 효과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지만 아베 전 총리는 밀어붙였다.

박상준 교수는 “저금리를 유지하는 정책 기조가 일본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 뒤를 이어 이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오르지 않는 임금에 손을 댔다. 임금을 올려 내수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이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 고령화·IT인재 부족이 발목잡을 수도

다만 일본이 아직 완전히 부활을 했다고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여러 이유 중 첫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일본 내 심각한 고령화 현상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일본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아무리 경제 호황이라도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즉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단 얘기다. 로봇이 대체할 수도 있지만 가까운 미래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 사회 내 청년층의 완전 고용상태도 그리 반길 일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첨단 산업에 필수인 기술 인재 부족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으니 젊은층에서 코딩 같은 굳이 어려운 기술을 배우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을 다시 키우려 해도 관련 인재가 부족해 일본 당국이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현재 닛케이 225는 역사적 고점을 돌파한 후 박스권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닛케이 지수가 박스권을 돌파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일본 기업들이 혁신을 통해 계속 실적 향상을 내보인다면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옛 영광’을 다시 재현해 내겠다는 일본 사회 내 분위기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일본 전문가는 “분명 일본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경제 구조 자체가 노쇠한 측면이 있다”면서 “현재의 선진국형 경제 구조를 더 도약시키기보다 유지시키는 쪽이 사회 구조상 더 효율적이고, 분위기도 그런 측면이 더 엿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 전문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본 사회가 혁신적인 분위기를 이어 나갈 수 있다면 장기적 측면에서 닛케이 지수는 우상향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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