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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혁명과 이주… 작가의 삶처럼 조각조각 붙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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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출신 현대미술가 니키 노주미

68운동 후 이란 혁명-전쟁 겪어

美 망명후 귀향했다 다시 추방당해

서울서 새 희망 담은 판화 60점 전시

동아일보

니키 노주미가 1981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판화 작품 ‘과거에서 현재로’, ‘군중 속의 사라’, ‘자는 사라’.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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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의 현대미술관에서 제 작품이 포함된 전시가 개막한 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챙기려 하지 말고 당장 이란을 떠나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공항으로 향했죠.”

이란 출신 현대 미술가 니키 노주미(82)는 고국을 영영 떠나게 된 이날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1980년 9월 22일 오전 9시. 그리고 3시간 뒤 메라바드 공항은 이라크의 폭격을 당했고 그 후 이란과 이라크는 8년간 전쟁을 벌였다.

이 무렵 이란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지만, 전쟁과 이슬람 공화국의 독재로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노주미가 미국으로 망명해 마이애미에 머물며 제작한 모노타이프 판화 60여 점이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13일 개막한 개인전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노주미는 1968년 테헤란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보자르에 입학했다가, 유럽 전역에 68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장학금 지급이 중단되어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민주적 절차나 인권을 도외시하는 팔레비 왕조에 항의하는 시위를 정기적으로 조직했던 그는 1979년 팔레비 왕조가 전복되고 이란 혁명을 기념하는 전시에 참여한다.

이 전시는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1980년 8월 열린 ‘혁명의 기록’. 노주미의 작품 120여 점이 포함되었으나 그의 작품은 얼마 뒤 전시에서 내려진다. 이슬람 공화국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을 부당하게 투옥, 처형하는 것을 비판한 것을 두고 ‘저속하다’고 미디어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결국 노주미는 이란을 추방당하다시피 떠났다.

왕조가 무너지며 자유로운 세상이 올 것을 기대했지만 더 극심한 독재 체제가 세워지는 것을 본 작가의 작품은 어두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시장 지하 2층에 펼쳐진 작품들은 처음엔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즈가 커지면서 복잡한 표현으로 발전해 나간다.

노주미는 “집에서 작업을 해야 해서 작은 사이즈로 시작했다가 좀 더 큰 작품을 하고 싶어 1장에서 2장, 4장, 가장 크게는 36장까지 이어 붙여서 한 작품을 만들었다”며 “각 부분을 따로 그려 나중에 합치기 때문에 종이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채가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작가가 ‘즐거움’을 언급한 것처럼, 가장 힘들었던 시절인 마이애미 판화 작품들은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한탄보다는, 작은 것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보인다. 걸음마를 배우듯 새로운 판화 기법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과정도 보인다. 작품의 내용은 긴장감이나 대립을 표현한 것이 많지만, 바닷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을 묘사한 것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작업실 한구석에 한 묶음으로 쌓여 있다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발견해 빛을 보게 되었다. 노주미는 “중동 출신 작가의 작품이 미국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며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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