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옛집 개관·추모 행사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거주한 대구 남산동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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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전태일의친구들’
모금 활동 등 복원 작업 주도
허물어진 셋방엔 의자 설치
‘열여섯 전 열사의 꿈’ 표현
“노동정신 계승의 장 되길”
전태일 열사가 어릴 적 거주한 대구 남산동 집(대구 옛집)이 5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전 열사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언급한 이곳은 시민들의 의지와 성금으로 마련됐다.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은 13일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 옛집’ 개관식 및 54주기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복원된 공간들을 공개했다. 행사를 주도한 전태일의친구들은 전 열사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고 알리기 위해 시민사회 등 각계 인사가 모인 단체다.
이 집은 전 열사가 1962년 8월부터 1964년 2월까지 가족 모두와 함께 살았던 셋방이 있는 곳이다. 당시 그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1963년 자신의 일기에서 이때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언급했다. 훗날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여섯 가족이 살던 셋방은 함석 지붕으로 덮인 약 12.54㎡(3.8평)의 공간이었다. 온 가족이 방 안에 2대의 재봉틀을 두고 봉제일을 했다. 어머니가 동산병원 담장에 걸려 있던 구호품과 옷을 사오면 전 열사는 동생들과 면도칼로 실밥을 뜯고 다림질을 했다. 이를 전 열사의 아버지가 재단해서 옷을 만들었다.
열사의 어머니는 옷을 지고 나가 시골장을 돌며 팔았다. 전 열사는 학교에 가기 전 오후 4시30분까지 봉제를 하면서도 벽에 영어 단어를 써서 붙여 놓고 외울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컸다. 하지만 1963년 11월 학업을 중단하게 됐고, 1964년 2월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대구를 떠나게 됐다.
대구 옛집의 존재는 2015년 유족과 지인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이 집을 지키고 다시 살려야 한다는 대구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여 2019년 3월 전태일의친구들이 조직됐고, 모금이 시작됐다. 대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서 시민 3200여명이 약 5억6000만원을 모아 2020년 옛집을 사들였다. 당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문패를 거는 행사도 열렸다.
“전 열사가 걸어온 그 길, 잊지 않겠습니다” 13일 경기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역에서 열린 제54주기 전태일 열사 추도식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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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본격적인 복원 공사를 위해 대구시와 논의에 나섰다. 지자체 예산 등 약 10억원을 들여 기념관 조성에 나서는 방안 등이 거론됐지만 옛집 소유권 등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무산됐다. 추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사업이 난항을 겪는 사이 옛집은 더욱 본래 형태를 잃어갔다. 결국 2차 모금운동을 벌인 끝에 건축비용(약 3억원)을 마련해 사업을 완료했다.
이미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던 셋방은 굳이 집의 형태로 복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열여섯 태일의 꿈’이라는 이름의 조형물과 표식이 자리했다. 학업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중단해야만 했던 전 열사의 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의자가 함께 놓였다.
또 옛집 전체 공간(195㎡) 가운데 셋방과 맞닿았던 주인집 등 나머지 공간은 원형을 최대한 복원했다. 복원된 공간은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위해 전시·체험·회의 공간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70)은 “오로지 시민의 성금과 뜻으로만 옛집 복원 사업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뜻깊고 기쁘다”면서 “앞으로 전태일 열사의 노동정신을 이어받고 대구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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