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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가짜 언어 : 영화가 보여준 언어의 본질 [어도락가(語道樂家)의 말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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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상 언어들의 이모저모를 맛보는 어도락가(語道樂家)가 말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틈새를 이곳저곳 들춘다. 재미있을 법한 말맛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숨겨진 의미도 음미한다.
한국일보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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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장소나 시대가 배경인 작품에서는 현실에 없는 언어가 이따금 나온다. 유명한 것으로는 '반지의 제왕'이나 '아바타'의 가상 종족, 또는 '스타트렉'이나 '컨택트'에서 외계인이 쓰는 언어 등이다. 현실에는 없지만 가상 세계 안에서 의사소통의 구실을 할 만큼 작가들이 나름대로 어휘나 문법 체계를 갖춰 정교하게 만든 것이기에, 열성적인 팬들은 마치 외국어처럼 익히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듯 다르게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에서는 ‘가짜 언어’가 나온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으려고 가짜 언어를 꾸며낸 유대인이 주인공이다.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감독(바딤 피얼먼)에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 주연이며, 독일 작가 원작 단편소설을 러시아어로 각색해서 영어로 번역했다가 다시 독일어로 옮겼고 배우는 다수가 독일인이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배우도 나오는 복잡한 다국적 영화다.

성씨가 코흐(Koch)인 대위는 원래 요리사(독일어 der Koch)이고, 나중에 이란에 가서 독일 식당을 차리려고 페르시아어를 배울 작정이다. 우연히 페르시아어 책을 손에 넣은 유대인 주인공은 살아남고자 페르시아인 행세를 한다. 대위가 의심하며 몇 마디 해보라니까 대충 외국말 느낌으로 주절댄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엉터리 언어라는 걸 눈치챘을 법한데 대위도 그렇게 믿고 싶었겠고, 설정상 유럽이 아닌 이국적 언어라서 적당히 넘어갈 만하다. 대개 독일인이 잘 모를 그리스어나 러시아어라도 구사자는 비교적 접하기 쉽기에 교차 비교의 여지가 많다. 반면 페르시아어는 그렇지 않았는데(지금은 이란계 이민자가 많음), 독일어와 아주 동떨어졌다기보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므로 대위가 그런 언어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들킬 여지가 더 컸을 것이다.

페르시아어는 아버지(페다르), 어머니(마다르), 딸(도흐타르), 형제(바라다르) 같은 기본 어휘가 게르만어와도 꽤 많이 닮았다. 러시아의 어문학자가 만든 가짜 언어는 그런 비교언어학적 지식을 배제해서 좀 특이하다. 극 중 ‘아빠’가 페르시아어 ‘바바’인 것은 맞고 여러 언어에 흔한 음절 구조인데 ‘엄마’는 바로 나올 ‘마마’ 대신 굳이 ‘안타’라고 한다. ‘어머니’의 뜻인 핀란드어 äiti[애이티], 터키어 anne[안네]를 섞은 느낌이다. 프랑스어 차용어도 있는 페르시아어에서 ‘식당’은 ‘레스토란’인데 ‘오노르단’이라 지어낸다. ‘오늘의 식단’과 우연히 비슷하다. 딴 낱말들은 수용자 인명부의 이름도 본떠 만든다.

‘말할 수 있다’는 맥락에 따라 달리 풀이된다. 인간만이 지닌 언어 능력도 뜻하고, 말할 기회나 권리가 있음도 뜻한다. 강제수용소에서 군인들 말고는 대부분 대사가 없다. 말할 권리가 없는 수용자들은 말할 능력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다가올 죽음으로 육체적으로도 언어 능력을 잃을 운명이다. 그렇게 침묵할 수밖에 없던 인간인 주인공에게 가짜 언어는 인간성을 지키는 보루가 됐다.

등장인물 둘 사이의 가짜 페르시아어는 서로 통하던 당시에는 진짜 언어였다. 지어낸 가짜 언어라도 진짜로 지어낸 언어인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가짜 언어를 말하던 입에서 수천 명의 희생자가 호명된다. 이름들은 불탄 명부의 잿더미로 사라지지 않고 가짜 언어의 어원으로 남는다. 비극 앞에 사람들은 말문이 막힌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한국어, 독일어, 페르시아어 같은 개별 언어보다 인간이 말을 하고 이름을 짓고, 글을 짓고, 말과 이야기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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