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9 (월)

트럼프 재집권, 미국의 '반세계화' 논리 [한국의 창(窓)]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선진국 최고 성장률, 미국의 빈부격차
단순 복지혜택 거부한 미국의 빈곤층
중국에 책임 묻는 고립주의 심화할 듯
한국일보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 후보가 미국 47대 대선에서 압승했다. 그는 두 개의 선거구호를 내세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우리나라는 몰락하고 있다". 전자는 45대 선거전부터 사용해왔고, 이번에는 후자가 애용되었다. 선거 결과는 이 구호의 호소력이 높았음을 말해준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정책철학에 대한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에 대한 특집 기사에 '세계의 부러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지난 반세기 세계화가 진전되는 기간,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1인당 소득은 이제 G7 선진국에 비해 40% 이상 더 높다. 세계의 기술혁신은 미국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고, 미국의 경제패권은 당분간 어느 국가에 의해서도 위협받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세계는 부러워하는데 막상 미국인의 민심은 얼어붙고 있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매년 미국인에게 세상 살기에 만족하는지를 묻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만족한다는 대답이 줄곧 40%를 넘었다. 최근에는 25%에 불과하다. 왜일까?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거론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높아진 물가로 살기가 팍팍해졌다는 해석이다. 일리가 있지만, '미국은 몰락 중'이라는 미국인의 민심과 그로 인한 트럼프 현상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미국 경제의 양극화와 미국민이 원하는 이에 대한 해법의 방향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은 1인당 소득이 선진국 중 가장 높지만, 가장 불균등한 소득분배의 나라이다. 미국의 가계를 소득에 따라 나누면, 최상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의 소득격차는 지난 반세기 크게 벌어졌다. 1980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 최상위층의 소득은 135% 증가하였다. 최하위층의 소득은 38% 증가에 그쳤다. 세계화의 수혜가 골고루 나뉘지 않았음이다.

사실 미국 경제의 양극화는 오랜 기간 알려진 현상이다. 이에 대한 미국 민주당의 해법은 복지정책이었다. 기업과 고소득 계층의 세금 부담을 늘려 빈곤층 지원을 늘리는 정책방향이다.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시행된 해법이기도 하다. 이 복지정책에 따른 효과까지 고려하면 미국 최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38%가 아니라 128%였다. 최상위층의 소득증가율 135%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를 보면 미국민은 민주당의 해법에 그다지 감동하지 않은 것이 된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고 복지 혜택으로 사는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해법은 최하위층의 몰락 원인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값싼 제조품과 경쟁하면서, 또 이민자들과 경쟁하면서 미국 하위층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니 관세와 불법이민 단속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복지지출을 위한 미국 중상위층의 세금 부담도 낮추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다. 법인세, 소득세 감면이 그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해법은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양극화 비용은 미국 내의 세계화 수혜자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경제 철학은 미국 경제 양극화의 비용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 등이 부담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세계화가 퇴조한다면, 차라리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철학이다.

트럼프의 45대 대통령 당선, 그리고 46대 낙선은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민의 대립이 치열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번 47대 대선에서 그의 압승은 정치분열이 정리되고, 미국민의 선택이 트럼프의 경제철학으로 수렴되었음을 시사한다. 자국 우선주의는 이제 미국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한국일보

신인석 중앙대 경영대학원장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