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영
가난한데 행복해지는 저녁에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불행이 더 많아서
어디선가 계산서가 날아올 것 같다
주문처럼 흥얼거린다
개미는 내일 와요
어제는
노래를 부르던 형이 죽었다
형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조금 작아진 것뿐이라고 믿는다
(중략)
개미의 슬픔은 개미보다 작겠지
인간의 슬픔은 인간보다 작다고 믿어야지
개미는 내일부터 오고, 매일 온다고
예언처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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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개미”는 올까? 온다고 해도 막상 너무 작아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다려본다. 개미를, 개미만큼 조그만 기쁨들을. 조그맣게 존재하는 선한 사람들을. 시인은 믿는 것 같다. 갑작스레 닥친 불행의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 잠길 때마다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 단지 조금 작아졌을 뿐, 소중한 것은 으레 다시 돌아온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들인지. 작은 우리가 바라는 건 한 알의 오렌지를 애인과 나눠 먹는 저녁의 작은 행복. 행복이 작은 것이라면 슬픔 또한 다르지 않을 텐데. 개미의 슬픔은 개미보다 작고 인간의 슬픔은 인간보다 작다는 말은 어쩐지 위로가 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믿음의 일. “내일”에 대한 믿음. 믿음이 있는 한 슬픔을 이겨볼 수도 있겠다. “가난한데 행복해지는 저녁”을 가질 수 있겠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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