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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엄마, 왜 병원 밖에서 울어…입사 8개월 만에 죽음으로 끝난 한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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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산업재해로 숨진 몽골이주청년 강태완씨의 기숙사 탁자에 고인의 어린 시절 사진이 놓여 있다. 김사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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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26년을 이주아동으로 살며 국내 정착을 위해 발버둥쳤던 몽골 청년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지난 8일 오전 11시께 전북 김제시 지평선산업단지에 위치한 특장차 생산업체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 옛 호룡)에서 32살의 노동자가 10t짜리 건설기계 장비와 굴착기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만 정확한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는 ‘유령들’(이주인권단체들은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 중 한명으로 살아온 그는 ‘존재 증명’(비자)을 얻자마자 소리 없이 스러졌다.



사건 당시는 이 회사에서 개발 중인 텔레핸들러(고소작업차와 지게차의 기능 결합)를 테스트하기 위해 공장에서 차량을 빼내 테스트 장소로 옮기던 과정이었다. 차량은 몽골인 연구원 ‘타이반’이 리모컨으로 원격 조종하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량이 출입구를 통과하던 중 경사로에서 속도가 빨라졌다. 차량을 몸으로 막아선 타이반이 순식간에 떠밀리면서 뒤쪽에 진열돼 있던 굴착기 사이에 압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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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을 이주아동으로 살며 한국에 정착하기를 소망했던 강태완(몽골명 타이반)씨가 지난 8일 전북 김제 특수장비차량 생산업체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에서 10t짜리 건설기계 장비와 굴착기 사이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그는 4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몽골이주아동의 이야기 ‘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의 주인공이었다. 사진은 사고가 난 공장 출입구 안쪽에서 지난 6월 촬영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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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완씨가 사망(8일)한 에이치알이앤아이 공장 현장에서 지난 10일 사건 차량이 푸른 덮개에 덮여 있다. 김사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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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한 119 응급대원들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사망진단은 1시간 뒤 내려졌다. 직접사인은 외상성쇼크였고 원인은 “다발성 늑골골절 및 심장파열”이었다. 11일 오전 부검에선 ‘늑골과 척추 손상 및 양쪽 폐 파열’이 확인됐다. 초동수사한 김제경찰서는 이날 변사 사건 조사를 끝내고 업무상과실치사 여부는 전북경찰청으로 넘겼다. 고용노동청도 사건 당일 현장 조사를 마쳤다. 에이치알이앤아이는 직원 230여명 규모의 회사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기업이다.



타이반의 한국 이름은 강태완이었다. 그는 호준(한국 가명) 또는 호이준(몽골 가명)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한겨레가 2020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4년 동안 연재해온 몽골 이주아동의 이야기 ‘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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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산업재해로 숨진 강태완씨의 사무실 책상에 회사 동료들이 가져다 둔 것으로 보이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김사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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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완(그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얼굴을 가려왔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다)은 6살이던 1998년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다. 엄마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자신이 있는 곳이 몽골인지 한국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아들을 잃어버릴까봐” 밖에서 현관문을 잠갔다. 어린 태완은 엄마가 손에 쥐여준 초코파이를 먹으며 하루 종일 엄마가 켜두고 간 텔레비전을 봤다. 엄마가 밤늦게 퇴근하면 “아들은 얼굴에 뽀뽀를 해대며 몽골말과 한국말과 일본말을 뜻도 모른 채 뱉었”다.



미등록 이주아동 태완에게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엄마는 “우리가 한국에서 살려면 화나는 일이 있어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태완은 학교에서 반 친구와 싸워도 항의하지 못했고 누군가 반지하 창문 앞에 폐지를 쌓고 불을 붙였을 때도 신고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민할 때 수능 준비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극도의 무력감에 빠졌다. 고등학교 졸업 뒤 그동안 보호막이 돼주던 학생신분(법무부 ‘재학생 강제퇴거 유예’ 지침)이 사라지자 언제든 강제출국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았다. 진학을 할 수도, 취업을 할 수도,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어 “기진맥진”했던 태완이 마지막으로 기댄 것은 2020년 법무부의 자진출국 정책(기한 안에 출국하면 재입국 기회 부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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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16일 강태완씨가 자진출국 신고를 위해 수원출입국‧외국인청(수원시 영통구)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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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6월 태완은 그토록 피해다녔던 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아가 자진출국을 신고했다. 코로나19 탓에 출국길마저 막혀버린 태완이 몽골행 비행기를 탄 것은 1년 뒤였다. “낯선 나라” 몽골에서 태완은 유학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의 2년제 대학 입학을 준비해 합격했다. 한국 생활 23년 만에 미등록 외국인으로 자진출국한 태완은 2022년 3월 신원보증인이 필요한 단기 체류 외국인이 되어 돌아왔다.



늦은 나이에 10살 어린 동생들과 동기가 된 태완은 성적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잠시 올라갔던 자신감”이 졸업을 앞두고 “다시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노력해도 태완에게 열린 일자리는 “대학 공부가 딱히 필요 없는 단순 생산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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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15일 강태완씨가 자진출국 신고 뒤 1년 만에 잡힌 몽골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사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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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완이 졸업을 앞두고 면접을 본 회사가 에이치알이앤아이였다. 경기도 군포에 살던 태완이 멀리 떨어진 김제의 회사에 취업(지난 3월)한 까닭은 ‘지역특화형 비자’(F2R)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정된 인구감소 지역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취업비자를 건너뛰고 곧바로 거주비자를 줬다.



태완은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힘들지만 발전할 수 있는” 연구원이 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6월 ‘막내 연구원’ 태완을 만났을 때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월급 전액을 적금에 넣고 잔업 만땅해서 받는 50만원으로 한달을 산다”면서도 그동안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내게도 꿈꿀 기회가 생긴 것 같아 하루하루가 설렌다”던 그가 입사 8개월 만에 산재로 사망했다.



119 구급대원과 사쪽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엄마(한국명 이은혜, 몽골명 엥흐자르갈, 62)는 “조사 나온 경찰에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병원 주위를 맴돌며 울었다. 몽골대사관이 경찰에 요청하고 경찰로부터 ‘걱정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병원으로 들어와 오열했다. 사망 이튿날 아침 안치실에서 아들의 푸른 얼굴을 본 엄마는 “그 힘든 시간을 견디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 하는데 왜 여기 누워 있냐”며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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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4일 몽골 울란바토르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강태완씨가 이륙 직전 찍은 자신의 모습. 강태완 제공


10일 오후 박장현 에이치알이앤아이 대표가 엄마를 만나 사과했다. 사망 경위는 “태완이 리모컨으로 조작하던 중 (장비가 밀려 내려오니까) 가만히 놔둬야 하는데 애사심과 책임감이 강해서 (뒤쪽 장비들과 충돌해서 파손되는 걸) 몸으로 막으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면서도 “(장비 오류인지 조작 미숙인지) 사고 원인은 경찰 수사와 노동청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진정되시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며 공개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 유족 지원 방안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을 보면, 테스트 차량이 공장 밖으로 나오기 직전 태완은 전후좌우를 확인하며 주변의 위험 요소를 파악한다. 경사 탓에 차량의 속도가 빨라지자 마지막까지 조작을 시도하던 태완이 리모컨을 놓고 차량 앞으로 들어가 몸으로 막는다. 조작에 능숙(회사 “이전에도 여러번 조종해본 적이 있다”)하고 주변 위험까지 대비했던 태완이 왜 하필 그날 그 순간만 조작에 실패했는지 유족 쪽은 의문을 품고 있다. 경찰 수사로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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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4일 오후 한 식당에서 강태완씨가 새로 발급받은 명함을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에게 건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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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완이 테스트장까지 옮기려 했던 텔레핸들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예산(128억원)을 지원하고 산하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케티)이 참여한 연구개발 사업이다. 에이치알이앤아이는 사업 주관기업이었다. 사고 전날부터 케티 연구원들이 회사로 와서 장비의 ‘아웃트리거’(바닥 지지 장치)를 테스트했다. 이튿날까지 이어진 테스트 현장엔 연구소 직원들도 나와 있었다.



테스트 중이던 텔레핸들러는 “(개발 단계가 아직) 50%가 안 되는 프로토타입(시험용)”이었다고 이 회사에서 태완과 함께 일했던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한겨레에 “기계 결함이 어딘가엔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고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서 태완씨에게도 (위험할 땐) 힘으로 안 되니 피해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자진출국 전부터 태완의 체류 자격 취득 등을 도와온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몇달 전 태완이 ‘국가 지원을 받아 개발한 차가 뭔가 작동이 안 돼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고 말했”던 일을 기억했다.



대표를 만난 직후 엄마가 아들의 사망 현장을 찾았다. 태완을 어린 시절부터 도와온 아시아의창·이주와인권연구소 활동가, 사망 직후 지원에 나선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변호사, 민주노총 전북본부 소속 노무사 등이 함께했다.



공장은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사건 차량엔 파란 방수천이 덮여 있었다. 출입구 앞 경사는 “20~3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고 태완이 밀려간 맞은편 장비까지 계속됐”(김사강 연구위원)다. 유족 쪽은 경찰과 고용노동청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사건 차량과 뒤쪽 차량의 충돌을 막기 위해 태완씨가 몸으로 막다가 벌어진 사고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차량이 태완씨를 밀어 사망하게 한 이유가 리모컨 오작동인지 기계 결함인지부터 수사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박영민 노무사는 강조했다. 유족 쪽은 회사를 상대로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유족에 대한 심리 치료 지원 등을 요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체류 자격이 없던 시절 태완에겐 소원 하나가 있었다. “비자를 받으면 운전면허를 따서 엄마 드라이브시켜 주는 것”이었다. 최근 200만원짜리 중고차를 산 태완은 사망 꼭 일주일 전 차를 몰고 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일터에서 엄마를 태워 집까지 돌아오며 ‘짧은 드라이브’를 마친 그는 어렸을 때처럼 엄마를 껴안고 볼에 뽀뽀했다. 소원 하나를 이루자마자 떠난 아들을 부르며 엄마가 울부짖었다.



“내 아들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요. 우리 억울함 좀 풀어줘요.”



(*유족 지원 모금: 카카오뱅크 3333-21-0810349, 예금주 김사강)



김제/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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