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만든 사람들] [3]
케네디家의 이단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지난 8월 23일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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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환상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같은 사람 말이죠. 그는 미국을 더 건강하게 만들도록(Make America healthy again) 도울 겁니다.”
4년 만에 백악관 재입성을 확정 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6일 새벽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승리 연설에서 케네디 주니어(70)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트럼프 2기’에서 보건 담당 요직을 맡길 가능성까지 살짝 내비쳤다. 지지자들은 일제히 “바비(케네디의 애칭)!”를 연호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을 다수 배출하며 미국 민주당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케네디 집안의 일원인 그가 공화당 정부의 실세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공화당·민주당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후보로 이번 대선에 뛰어들었던 그가 지난 8월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하차한 것은 트럼프가 중도 표심을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 대세론을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 명문 케네디가에서 1954년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큰아버지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5년 뒤에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히던 아버지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까지 모두 암살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하버드대와 런던정경대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 로스쿨을 거쳐 법조인이 됐다.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정치 명문가 후손의 이력이지만, 큰아버지·아버지의 암살 충격으로 10대 청소년 시절 약물 남용으로 기숙학교에서 두 차례 쫓겨났고, 이후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등 불우한 성장기를 겪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지금까지 두 차례 이혼하고 2014년 배우 셰릴 하인스와 결혼했으며 첫째·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여섯 자녀를 뒀다. 그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벌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영국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최근에도 뉴욕의 잡지사 기자와의 불륜설이 일기도 해 해당 기자가 회사를 떠나는 일도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그의 엉뚱한 행동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8월 엑스(옛 트위터)에 “2014년 허드슨밸리에 사냥을 다녀오던 중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암컷 새끼 곰을 발견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가져다 놓았다”고 느닷없이 밝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10년 전 센트럴파크에서 죽은 곰이 발견된 미스터리 사건에 자신이 연관돼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잡지 뉴요커가 취재를 시작하자 선제적으로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환경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업을 상대로 여러 건의 재판에서 승소하며 이름을 알린 케네디 주니어는 2000년대 들어 백신 반대 운동을 적극 펼쳤다. 우연한 기회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했다는 회의록을 본 것이 계기였다고 알려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백신 반대 운동을 펼치며 논란도 불러 온 그는 줄곧 “아동 백신에 들어 있는 보존제가 자폐증 유발에 영향을 준다”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불어닥쳤을 때에도 ‘백신을 통해 칩을 체내에 투여하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한다’ ‘백신을 승인한 것은 앤서니 파우치(전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 등과 같은 음모론을 펼쳐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때문에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그의 계정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케네디 집안 출신의 괴짜 변호사 정도로 알려졌던 그는 지난해 10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과의 결별 사유를 ‘당의 변심(變心)’으로 꼽았다. 그는 바이든으로부터 민주당 대선 후보를 넘겨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8월 23일 전격적으로 후보를 사퇴하고 트럼프 진영에 합류했다. 트럼프는 “(나에 대한 케네디의) 지지 선언이 선거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환영했다. 케네디 집안 구성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 성명까지 냈지만 그의 공화당행을 막지 못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유세장과 각종 방송 인터뷰에 등장한 그는 여느 정치인과 달리 가늘게 떨리고,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로도 화제가 됐다. 이는 뇌 신경망의 이상으로 성대를 열거나 닫는 근육에 경련이 발생하는 ‘연축성 발성 장애’가 원인으로 그는 지난해 TV인터뷰에서 “마흔두 살이던 1996년에 이 병을 앓아 지금 같은 목소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케네디가 트럼프 승리 직후 정권인수팀에 합류하면서 트럼프 2기에서 보건 분야 요직 기용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그에게 “공중 보건 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백신 접종을 반대하며 음모론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 보건 수장에 기용될 경우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급진적인 개혁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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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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