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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기자의눈] 관료주의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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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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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정문경 기자 = '관료제'(Bureaucracy)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약 2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관료제는 '혁신'에 가까웠다. 특정 계층, 특권에 의해 좌우되는 행정 시스템이 아닌 전문적·위계적 조직체계를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란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효율성 대신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관료제는 점점 '관료주의'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관료제 시스템이 기업에 접목된 건 20세기 초다. 고도 성장기에 관료제를 받아들인 기업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전 세계 주요 대기업이 관료제 형태의 조직체계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갈수록 관료제 혹은 관료주의는 기업 혁신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에게 관료주의의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소수 리더들에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되지만, 그 단계까지 올라가려면 수많은 중간관리자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최종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층층의 보고체계를 거치는 동안 정보가 왜곡될 우려도 있다. 특히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받는 테크 기업들에는 '관료주의 혁파=생존'이란 공식도 성립한다.

'인텔'의 몰락은 관료주의가 어떻게 기업을 무너뜨리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텔이 어떤 기업인가. 한때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 불리던 '영원한 제국'. '인텔 인사이드'란 말을 자신 있게 내걸 수 있는 최고의 혁신기업이었다. 그런 인텔 왕조의 몰락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관료주의'를 꼽는다. 지난 8월 립부 탄 전(前) 케이던스 CEO가 인텔 이사회에서 자진 사임한 이유를 외신들은 "인텔 내부의 관료주의에 염증을 느낀 탓"이라고 꼬집었다. 비대한 인력, 위험 회피 문화, 뒤처진 인공지능(AI) 전략 등이 인텔을 무너지게 했다는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부활은 인텔과 대조적이다. 2010년대 들어 수많은 위기설에 휩싸였던 MS는 지난 2013년 사티아 나델라 CEO 부임 이후 '관료주의'에 찌든 조직문화를 뜯어고쳤다. 그리고 조직체계와 의사결정 구조를 바꿈으로써, AI 시대 클라우드 분야의 최강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인텔과 MS. 두 갈랫길 사이에 삼성이 서 있다는 얘기가 최근 많이 나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1등 기업으로 추앙받던 삼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반도체 부진에 가려져 있을 뿐, 대부분 주력사업에서 '멈춰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삼성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관료주의적 조직 문화를 꼽는다. 인텔처럼 조직 내 관료주의가 기술 혁신의 정체로까지 이어지면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도전도 안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문제점을 삼성 경영진이 느끼고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도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겠다", "우리의 전통인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는 게 삼성 반도체 총괄(전영현 부회장)의 현실진단이다. 적어도 펄펄 끓는 냄비 속 개구리는 아닐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삼성이 인텔의 길로 갈지, MS의 길로 갈지는 현 단계에선 점치기 힘들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삼성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의 역사를 이뤄낼 것이라 믿고 싶다. 삼성의 재도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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