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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 (월)

“우리 반 여학생들 단체로 생결 쓰고 시험 공부하러 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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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출석 인정해주는 생리공결제 논란

워킹맘 김현지(46)씨의 중2 딸이 어느 날 아침 드러누웠다. “나 오늘 생결 쓸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생결 쓰고 놀러가는데 나는 왜 안 돼?”

생결은 ‘생리결석’의 준말. 생리통이 심해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 출석을 인정해주는 ‘생리공결제’를 일컫는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에 생리공결제 시행을 권고하며 도입됐다. 김씨는 “생리통이 심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날은 생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며 “마치 직장인들이 연차 챙겨 쉬듯이 하루 놀겠다며 생떼를 쓰는데 황당하더라”고 했다.

송도에서 두 딸을 키우는 한모(49)씨는 “대학생이 된 큰딸은 생결을 못 쓰게 했는데 나중에 좀 후회했다”며 “시험 기간 직전이나 외부 활동이 있는 날 생결을 쓰고 공부하는 아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독한 내신 경쟁 속에서 하루를 더 벌 수 있으니 엄청난 이득이라는 것이다. 한씨는 고1인 둘째 딸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날이면 자유롭게 생결을 쓰게 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월 1회 주어지는 권리라고 생각해요.”

◇“4월 말에 쓰고 5월 중순에 또”

물론 순기능도 있다. 서울에 사는 이정은(44)씨는 “아이가 4학년 때 초경을 해 뒤처리를 어려워한 데다 생리통도 심한 편이었다”며 “생결 제도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진통제로 버텨가며 끙끙 앓던 기억, 체육 실기시험이 겹쳐 낭패를 본 일, 수학여행 같은 외부 활동 때 불편하던 상황 등을 많은 여성이 겪었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무분별한 생결 남발은 논란이다. 대표적인 것은 ‘생결 폭탄’. 같은 무리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생결을 쓰고 결석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최근 ‘블라인드’에 한 교사가 요즘 고등학생들의 특징을 정리해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개근이 한 반에 5명도 안 된다는 점을 짚으면서 “여학생들이 단체로 생결 쓰고 놀이동산 가서 노는 걸 알게 됐지만 그냥 넘어가라는 분위기 탓에 묵인했는데 화가 많이 났다”고 썼다. 또 다른 교사도 “중학교 여자반인데 한 반에 10명 이상씩 늘 생결을 쓴다”며 “4월 말에 썼는데 5월 중순에도 쓴다. 열흘 만에 다시 생리한다고 하니 너무 웃겨서 할 말도 없음”이라고 올렸다. 생리공결제라는 제도가 엄연히 있는 데다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증빙자료 요구도 강제하지 않는 형편이다 보니, 교사들이 알고도 속아준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에게는 역차별?

최근 서울예대가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한 경우에 한해서만 생리공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가 논란이 되자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외대도 서면으로 처리했던 생리공결을 전산에 생리 시작일을 등록하는 것으로 바꿔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고,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생리공결제가 오남용되고 있다”며 재학생들의 생리공결제 이용 현황 통계를 공개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업체에서도 생리 휴가가 원래의 목적이 아닌 필요·편의에 따라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논란이다. 금요일·일요일이나 연휴에 붙여 사용하는 ‘얌체족’들이 표적이 되고, 젠더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생결’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에게 불공평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1 아들을 둔 박모씨는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여자애들이 네댓 명이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생결을 썼다고 하더라”며 “아들이 남자라서 억울하다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역차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입시 단톡방에서는 지난달 15일 모의고사일에 대량 발생한 ‘생결 폭탄’을 토로하는 글도 올라왔다. “고2 아들 학교 학생도 3분의 2 이상이 모의고사 결석한 것 같더라고요. 당일에 연락해서 생결이든 질병결석이든 쓴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중간고사를 앞둔 학교는 생결과 질병결석으로 한 반에 7~8명이 모의고사일에 결석했다고 하네요.” 서울의 고교 교사 박모씨는 “생리 결석을 공결로 인정은 하되 사용 횟수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방법 등도 고려해볼 만하다”며 “합법 결석권처럼 향유하는 경우는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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