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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그토록 구박받았었는데…300년 만에 '신분 세탁' 성공한 식재료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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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호박 디저트 남과병(南瓜餠)과 중국 호박 식용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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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남과병(南瓜餠)은 우리한테는 낯선 듯 익숙한 중국 음식이다. 낯선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익숙한 까닭은 맛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어로 남과(南瓜)는 호박, 병(餠)은 떡 내지는 빵이니 쉽게 말해 호박빵(떡)이다. 하지만 워낙 형태가 다양해서 우리말로 단정해서 호박빵(떡)이라고 옮기기가 간단치 않다. 때로는 늙은 호박에 찹쌀가루를 섞어 만든 일본 떡 모치 같기도 하고 혹은 우리 호박떡과도 비슷하며 또는 늙은 호박에 밀가루를 섞어 부친 호박 부침개와도 닮았다. 한마디로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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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양의 남과병.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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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남과병, 달달하고 쫄깃하면서 부드러워 상당히 맛있다. 특히 단 음식과 군것질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늙은 호박의 풍미까지도 함께 맛볼 수 있으니 중국에서 폭넓게 사랑받는 듯싶다.

이를테면 제대로 격식 갖춘 요리들이 순서대로 나오는 격조 높은 연회상에 마지막 디저트로 나오기도 하고 혹은 고급스럽게 포장해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대중음식점에서, 노점에서 거리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간식이어서인지 남과병은 별명도 많다. 청나라 후반 상해에서는 이 남과병을 만년고(萬年高)라고 불렀다. 19세기 후반 상해현의 기록인 『상해현지찰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년고란 별칭이 나이가 들어 원숙하다는 연고(年高)에서 유래한 것인지 혹은 한 걸음씩 높은 곳으로 오르다(步步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축원의 의미가 담긴 것은 분명하다. 남과병 먹으면서 승진을 혹은 원숙해지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남과병은 또 금과병(金瓜餠)이라고 했다.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이 금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지만 찹쌀가루와 섞어 둥글고 노랗게 부친 남과병이 마치 금화를 닮아 먹으며 부자 되기를 소원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남과병이 고급 연회에 디저트로 나온 배경에는 이런 의미도 한몫했을 것이다.

늙은 호박떡 내지는 부침개 하나 놓고 뭐가 이렇게 요란스러울까 싶은데 남과병이 처음부터 격조 높은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남과병이라는 중국 호박 디저트 속에는 호박이 처음 중국에 전해졌을 때 얼마나 심한 구박을 받았는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마침내 어떻게 고급 요리의 재료가 됐는지 호박의 식용 역사, 한 걸음씩 높은 곳으로 오르는 뿌부까오(步步高)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남미가 원산지인 호박이 유럽을 거쳐 중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대략 16세기 초반 무렵인 것으로 추정한다. 1492년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호박이 중국에 전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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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출처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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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중국에 전해진 경로는 그 이름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서역 혹은 오랑캐 땅에서 전해진 박이어서 호(胡)박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남쪽 나라인 남번(南番)에서 전해진 박(瓜)이어서 남과(南瓜)라고 한다. 혹은 번과(番瓜)라고도 했다. 호박이 전해진 경로는 다양했던 것 같다. 왜과(矮瓜)라고도 했는데 일본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반과(飯瓜)라고도 불렀다. 아마 흉년이 들었을 때 밥(飯) 대신 먹을 수 있는 박 같은 열매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호박이 전해진 후 상당 기간 동안 중국에서 썩 환영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명나라 후반 의학서인 『본초강목』과 식물 백과사전인 『군방보』등에 삶아서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날로는 먹지 못한다고 한 것을 보면 아직 호박 요리법이 확실히 자리 잡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청나라 초 『호록경적고』에는 호박은 남쪽에서 왔는데 가난한 집에서 식량 대신 먹는다고 적혀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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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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