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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박석무의 실학산책] “성만으로는 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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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조선의 실학사상을 연구하다 보면 의외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등 셀 수 없이 많은 실학자들…. 어느 누구 한 분 뛰어난 사상과 철학을 지닌 학자들이 아닌 분이 없지만,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다산 정약용에 이르면 그 사상의 혁신성 때문에 더 많은 느낌을 갖게 해준다. 1797년은 다산의 나이 36세였고 지금으로부터 227년 전의 일이다. 이 해에 다산은 황해도 곡산도호부사에 임명되어 최초로 목민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목민관은 삼권(三權)을 행사하는 권력자로 수사와 재판도 담당하던 때였다.



백성 저항권 인정한 다산 판결

주자학과 다른 다산학의 논리

‘덕’을 실천하는 개념으로 해석

“착한 성품, 행동으로 옮겨야 덕”

민란 주동자를 무죄 판결한 다산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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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면 다산이 곡산 땅에 부임하여 첫 번째로 처리한 재판이 바로 이계심(李啓心) 사건이었다. 농민 1000여 명을 이끌고 관아에 쳐들어온 민란의 주동자가 이계심이었다. 판결의 주문은 무죄.

“목민관이 밝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느라 꾀가 많아 관의 잘못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계심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관에 항의하는 일을 했으니,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지 벌을 줄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너를 오늘 무죄 석방한다.”

전제군주 국가의 재판관으로 관아에 침범한 민란의 수괴를 무죄 석방한 다산, 230여 년 전의 재판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국민의 저항권을 확실하게 인정한 다산, 얼마나 위대한 선각자이자 진보적인 학자인가.

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위해 관아에 쳐들어가 항의하는 일은 무죄라는 다산의 법의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주자학’과 분명한 차이를 지닌 ‘다산학’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주자는 성(性)은 이(理)라고 해석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은 성이란 기호(嗜好), 즉 어떤 일에 즐기려는 ‘경향’으로 해석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주자는 이(理)라는 관념의 논리를 구축했으나, 다산은 기호라는 행위를 전제한 경험의 논리를 세웠다. 그래서 유학의 최상가치인 덕(德)의 해석에서 주자와 다산은 판이한 사유체계로 갈라진다. 주자는 덕이란 ‘구중리(具衆理)’ 즉 온갖 이치를 갖춘 이의 개념으로 여겼지만, 다산은 덕이란 ‘효제자(孝弟慈)’라는 행하고 실천하는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다산학의 핵심인 ‘원덕(原德)’이라는 짤막한 논문 한 편은 바로 현실에 가장 절실한 글임을 알게 된다. “하늘이 명(命)한 것이 성(性)이요,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다”라는 『중용』의 철학에 따라 다산 자신의 철학이 나왔다. “명(命)과 도(道) 때문에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자기와 남이 있기 때문에 행(行)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그 성과 행 때문에 덕(德)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만 가지고는 덕이 될 수가 없다”라는 세기적인 발언이다. 아무리 착한 성품이지만 그 착한 성품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어지는 일이 없다면서 그런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성(性)+행(行)=덕(德)이라는 영원한 진리가 다산학에 담겨 있다.

유학사상의 주류는 당연히 성선설이다. 인간은 본디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이론에 근거해서 다산은 성을 양심(良心)과 함께 설명한다. 하늘에서 받은 착한 성품, 하늘에서 받은 선량한 성품, 이런 성품을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덕이 되므로, 성품과 양심을 몸속에 담아두고서는 세상과 역사는 제대로 가지 못함을 밝혀낸 사람이 다산이었다. 우리 시대의 정치가(政治家) 김대중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고난의 일생을 행동으로 투쟁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했던 역사적 경험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기고, 양심을 실천할 때에만 바르게 갔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3·1혁명,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항쟁, 모두 정의로운 성품과 양심을 잠자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이 나라에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지도자는 국민 뜻에 따라 정치해야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들이 돌을 던지면 왜 돌을 던지는가를 알아내서 돌을 던지지 않을 정치로 국정의 기조를 바꿔 국민들의 뜻에 따라야지,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하면 국민들의 뜻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이니, 그런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과 희생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오르도록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시켰던가. 그러나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겨우 2년 반 사이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망가지고 파괴되었는가. 이 나라 민족정기와는 역행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이 국가의 요직을 점령하였고 친일매국 세력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이제는 바른 성품과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자.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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