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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물가·이민 문제에 트럼프식 선동 주효…‘정권 심판’ 택한 유권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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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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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각) 미국 대선 결과 승리가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러 기록을 동시에 세우게 됐다. 승리가 공식적으로 확정되면 역대 최고령(78살) 대통령 당선자가 된다. 또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처음으로 첫 임기와 두번째 임기가 바로 이어지지 않은 대통령이 된다. 범죄 혐의에 유죄 평결을 받은 첫 대통령 당선자도 된다.



이는 모두 불리한 점들을 극복한 것이기도 하다. 여러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데는 핵심 쟁점들을 놓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상태에서 이를 적극 이용한 게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경제·물가, 이민, 임신중지, 민주주의를 주요 이슈로 꼽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경제·물가와 이민이 1·2위 이슈로 꼽히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혔는데, 사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요 경제 지표인 실업률과 성장률은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40여년 만에 가장 높게 치솟은 물가였다. 2022년 6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1%를 찍었다. 이는 올해 9월 2.4%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에 고통을 겪었고, 많은 이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2인자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 전망에도 부정적이었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누가 경제를 잘 다룰 것인가’를 물었을 때 트럼프는 해리스를 10%포인트가량 앞섰다. 뉴욕타임스-시에나대의 9월 여론조사에서 이런 질문에 트럼프가 13%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이 차이는 지난달 말 6%포인트까지 줄었다. 하지만 해리스는 결국 가장 중요한 이슈에서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민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 때 급증한 멕시코 국경 월경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는 해리스가 한때 이민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관해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맡은 것을 놓고 ‘국경 차르’라는 별명을 붙이며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트럼프는 또 2016·2020년 대선 때처럼 불안 심리와 외국인 혐오를 적극 조장하는 유세로 백인들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결집시켰다. 그는 미등록 이주자들은 습관적으로 “살인자”, “성폭행범”, “마약 밀매자”, “해충”이라고 불렀다.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남의 집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해리스가 허리케인 구호에 쓸 돈을 미등록 이민자들을 위해 빼돌렸다는 거짓말도 했다. 취임하면 군대를 동원해 미등록 이민자 대량 추방에 나서겠다는 공약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올해 초 국경 통제를 강화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법안을 공화당 의원들을 움직여 부결시킨 바 있다. 통제 강화로 월경자가 줄면 자신이 선거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이성적 판단 대신 트럼프의 거짓말과 과장이 섞인 선동이 더 잘 통했다. 결국 유권자들의 귀를 잡아끈 것은 트럼프였다.



트럼피즘이라는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도 백인들과 경제적 중하류층 유권자들에게 다시 호소력을 발휘했다. 트럼프는 “동맹이 우리를 뜯어먹고 있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국 등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했다.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관세’를 매겨 무역 장벽을 쌓겠다는 공약도 고립주의적 성향이 강화된 유권자들에게 통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흑인과 히스패닉의 트럼프 지지가 증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언론 출구조사에서 남부 경합주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서는 흑인들이 지난 대선보다 그를 더 지지했고, 북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등에서는 히스패닉계의 지지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의 승자는 ‘정권 심판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바이든은 업무 수행 지지도가 40% 안팎에 불과하다. 현직 대통령 지지도가 이 정도인 정당이 정권 연장에 성공한 적이 없다. 해리스로서는 흑인이자 아시아계라는 소수인종 배경과 여성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는 조건에서 바이든 행정부 2인자라는 그늘까지 드리웠던 셈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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