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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캐즘이 뭔가요? 중국 BYD, 질주에 가속이 붙다[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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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졌다는 2024년, 오히려 역대급 기록을 달성하며 질주하는 전기차 제조사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 BYD(비야디)이죠. 3분기 매출에서 처음으로 미국 테슬라를 제친 데 이어, 10월엔 월간 판매량이 전 세계 전기차 기업 중 처음으로 5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놀라운 신기록 행진인데요.

20여년 전 조롱 속에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배터리 기업은 어떻게 전기차 산업의 리더로 떠오르게 됐을까요. BYD 창업자 왕촨푸(王傳福) 회장의 지독한 기술 중심주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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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가라앉은 2024년, 나 홀로 질주 중인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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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던 배터리 기업

2003년 37세 중국 기업인 왕촨푸는 제법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BYD는 세계적인 휴대폰 배터리 제조사로 성장했고, 2002년 7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으니까요. 성공한 ‘배터리 왕’으로 불리던 2003년 1월. 왕촨푸가 폭탄선언을 합니다. 친촨자동차를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한 거죠.

휴대폰 배터리 지금 너무 좋은데, 웬 자동차? 투자자들은 뒤집어졌습니다. 하루 만에 주가가 21% 폭락했죠. ‘휴대폰 배터리 제조사가 감히 자동차를 만든다고?’라는 조롱이 쏟아졌고, 주변에서도 “위험한 게임”이라며 그를 뜯어말립니다.

당시 왕촨푸는 자동차를 운전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자동차는 쇳덩이다. 자동차 제조는 장난감 만드는 것과 같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잘 몰랐기 때문에 과감히 뛰어들었을 겁니다.

2004년 말 왕촨푸는 BYD가 처음 자체 개발한 내연기관 신차 316을 자랑스럽게 공개했죠. 돌아온 딜러 반응은 “차가 너무 못 생겨서 팔 수 없다”는 혹독한 비판. 평소 조용하고 침착한 왕촨푸는 이때 너무 화가 나서 망치로 차량을 때려 부숴버렸습니다. BYD 자동차 제조 초창기의 흑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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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는 2008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당시 왕촨푸 CEO와 워런 버핏 회장이 함께 찍은 사진. 버핏은 찰리 멍거 부회장이 “에디슨과 잭 웰치를 합친 인물”이라며 왕촨푸를 극찬한 것에 설득당해 BYD에 투자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2022년부터 BYD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데, 수익률이 2000% 이상으로 추정된다. BYD 홈페이지 


다행히 이후 BYD가 출시한 F3는 도요타 코롤라 디자인을 베꼈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BYD 자동차 사업이 이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나 싶었던 2007년, 왕촨푸는 또다시 대담한 선언을 합니다. “2015년까지 중국 1위, 2025년엔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가 되겠습니다.”

고작 연간 10만대 생산하는 기업이 세계 1위를 운운하다니. 이후 수년간 왕촨푸는 헛소리하는 기업인으로 조롱받습니다. 하지만 왕촨푸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가 당시 생각한 자동차 산업을 재편할 신무기는 바로 전기차였죠. “BYD는 선도적인 배터리 기술을 사용하는 순수 전기차 E6를 출시할 겁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선전에 건설하면, 전기차가 비 온 뒤 버섯처럼 솟아 나올 겁니다. 이 파괴적 제품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BYD는 늘 ‘세계 최초’를 추구합니다.”(2007년 8월)

고집스럽게 기술 개발

BYD는 2008년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인 F3DM, 2009년 순수 전기차 E6를 출시합니다.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와 리튬 광산도 인수했죠. 이런 공격적인 행보에도 업계는 싸늘했습니다. 도무지 전기차 시대라는 게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2011년 중국 자동차산업 발전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BYD에 냉담했습니다. “정부가 전기차 개발에 과도하게 적극적이게 만든 책임이 BYD에 있다”고 대놓고 비판했죠.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기차 관련 막대한 투자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주가는 1년 만에 반토막 납니다. 부사장급 고위 경영진들까지 일제히 주식을 팔아치울 정도로 분위기는 엉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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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BYD가 공개한 영상 속 왕촨푸 BYD 회장. 그는 “곧 신에너지차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달성한다”고 말했다. BYD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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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전기차에 올인하다가 BYD가 망하게 생겼단 비난이 쏟아졌지만, 왕촨푸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동시에 매우 고집스러운 경영자이죠. 그때 마음고생이 꽤 컸는지, 지난해 열린 500만대 신에너지 차량 출시 기념 행사에서 그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의심과 조롱 속에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굳건히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연구개발에 수천억 위안(수십조원)을 투자했습니다. 지난 12년(2011~2022년) 중 11년은 연구개발 투자비가 그해 순이익을 초과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BYD 이익이 3년 연속 크게 감소했습니다. 특히 2019년엔 순이익이 16억 위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연구개발에 84억 위안을 투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돈을 태운다며 비웃었습니다.”

2020년, 질주가 시작되다

그렇게 축적해 온 BYD의 전기차 기술 잠재력이 2020년 폭발적으로 발현됩니다. 그해 3월, BYD가 혁신적인 배터리 신제품을 선보였죠. 칼날처럼 얇은 셀을 촘촘히 박아서 만든 ‘블레이드 배터리’입니다.

왕촨푸는 전기차 운명을 결정하는 건 결국 배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휴대폰 배터리 제조사였던 BYD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죠. 초기부터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승부를 걸어온 BYD의 야심작이 바로 블레이드 배터리였습니다. 같은 부피에 훨씬 더 많은 배터리셀을 넣어 성능(주행거리)은 대폭 향상시키면서도 안정성을 높인 거죠. 주행거리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가성비 갑’ 브랜드로 BYD가 떠오르는데요. 마침 팬데믹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 준비된 강자, BYD의 무서운 질주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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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의 블레이드 배터리. 칼날처럼 생긴 배터리 셀을 촘촘히 배치해, 에너지 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약점을 커버했다.  BYD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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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못지않게 BYD가 역점을 둔 기술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입니다.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쓰면서, 외부 전원(플러그)으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차량이죠. 사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순수 전기차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라고 여겨져서, 그리 각광받진 못했던 기술인데요. 왕촨푸는 “다른 회사들이 연구개발을 포기했고, 내부 많은 사람도 포기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고 회상합니다. 2020년 BYD는 효율을 대폭 높인 ‘DM-i 슈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내놓았고요. 그 결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빠르게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떠오릅니다. 그의 베팅이 들어맞은 거죠.

혹시 올 5월 BYD가 새로 선보인 5세대 DM-i 하이브리드 시스템 스펙을 보셨나요? 연비가 100㎞당 2.9L(한국식으로 바꾸면 L당 34.5㎞)이고, 최대 항속거리가 무려 2100㎞(소형차 기준)라고 BYD가 밝혔습니다. 스펙이 충격적으로 좋아서 중국에서도 ‘말도 안 돼. 이거 거짓말 아니야?’라는 의심이 제기됐는데요. 이후 주행 연비를 확인하는 관련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실제로 연비가 상당히 좋다는 게 확인되는 중입니다(단, 중국은 연비 측정 기준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점 유의하세요). 중국에서 BYD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신형 모델이 현재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유이죠. 지난달 BYD가 판매한 승용차 50만대 중 32만대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전년보다 129% 성장)입니다. 순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캐즘’의 2024년이지만 BYD는 되레 더 잘 나가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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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BYD(파란색), 테슬라(노란색), 폭스바겐(하늘색) 주가 흐름 비교. 구글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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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기술 중심주의와 약점

정리하자면 한국에선 싸구려 전기차로 폄하되는 BYD이지만, 저렴한 가격 못지않게 기술력이 큰 강점입니다. 이는 사실 연구개발비만 봐도 알 수 있죠. BYD가 올 상반기에 지출한 연구개발비는 202억 위안(약 3조9000억원). 전년보다 42%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순이익(136억 위안)은 물론, 테슬라(22억3000만 달러, 약 3조원)보다 많습니다.

BYD는 중국에서 직원 수(약 90만명)가 가장 많은 민간기업인데요. 이 중 약 11만명이 연구개발 인력입니다. 전 세계 자동차 기업 중 단연 최대이죠.

BYD 연구 인력은 3년 전(약 4만명)의 세배 가까이로 불어났습니다. 중국 명문대학 석박사 출신을 대거 채용하고 있죠. 왕촨푸는 외부에서 경력자를 영입하는 것보다 백지상태에서 기술 인력을 새로 키우는 걸 선호하는데요. 그래서 대졸 신입사원들을 기숙사에 집어넣고 엔지니어로 양성합니다. 회사는 대학의 연속이고, 관리자는 곧 멘토가 되는 거죠.

왕촨푸는 기술자라는 자부심이 상당히 큰 CEO입니다. 평소에도 정장보단 작업복을 입고 공장과 연구실에서 일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데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 적 있죠. “나는 먼저 엔지니어이고, 그다음 기업가입니다.”

또 오래전부터 BYD의 가장 큰 재산은 엔지니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은 엔지니어이지만, 재무제표엔 이 데이터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과 투자자 인식의 가장 큰 괴리입니다.” “토지·공장·특허·주식 등 모든 재산이 사라져도, 엔지니어들이 있는 한 (BYD는)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BYD에서는 기술이 왕이고, 혁신이 기초이며, 핵심은 R&D 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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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는 최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급증하면서 지난달엔 전 세계 전기차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월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했다. 올해 판매 목표치인 400만대를 거뜬히 돌파할 전망이다. 2023년엔 총 300만대를 팔았다. BYD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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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술자 중심의 독특한 문화가 지금의 BYD를 만든 건 분명한데요. 이건 자칫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BYD는 외부 수혈 없이 자체 인력을 키우다 보니 전체 조직이 ‘또 하나의 왕촨푸’처럼 되어버렸죠. BYD 왕국에서 왕촨푸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사실상 회장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이 거대 기업을 좌지우지하죠. 이는 곧 왕촨푸 개인의 한계가 BYD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단 뜻이기도 합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왕촨푸는 지난해 초만 해도 “기만이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다”면서 경쟁사의 자율주행 기술을 평가절하했는데요. 올해 들어서는 갑자기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섭니다. 지난해부터 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선 이미 경쟁의 초점이 자율주행 성능으로 옮겨갔는데요. BYD가 경쟁사보다 한발 뒤처졌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BYD는 JD파워가 꼽은 중국의 지능형 전기차 브랜드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1위는 지커, 2위 샤오펑).

전기차를 더 싸고 잘 달리게 만드는 기술의 강자인 BYD가 ‘더 스마트하게’도 만들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자율주행 기술에 1000억 위안(약 19조3000원)을 투자한다는 BYD의 발표는 업계를 긴장케 합니다. 지금까지 왕촨푸의 BYD는 일단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기어코 해내는 기업이었으니까요. By.딥다이브

왕촨푸 회장은 흙수저 출신입니다. 안후이성 시골의 가난한 농부 집안인 데다, 일찍 부모님을 잃었죠. SNS 같은 건 일절 하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인데요. 그래서 금수저이자 SNS 대스타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캐릭터입니다. 다만 기술에 대한 집착과 포기를 모르는 끈기, 워커홀릭 기질 등. 일하는 방식에 있어선 공통점도 상당히 많죠.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주춤한 2024년에도 BYD는 놀라운 질주를 이어갑니다. 3분기 매출에서 테슬라를 처음 제쳤고, 10월엔 월 50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죠.

-BYD 왕촨푸 회장은 일찌감치 ‘전기차로 세계 1위’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상은 그를 조롱했지만 고집스럽게도 기술개발에 매달립니다.

-축적된 기술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2020년부터. 블레이드 배터리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우위로 BYD는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독특한 엔지니어 중심 문화는 BYD의 강점이지만, 왕촨푸 회장 1인 체제는 자칫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익성을 따지기보단 연구개발에 올인하는 BYD의 질주는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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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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