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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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정서와 국내 불안이라는 맥락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촉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을 변화시켜 왔다. 자유무역 정당에서 보호무역 정당으로, 동맹 정당에서 분담금 정당으로 변모시키는 시도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럼프의 변화는 주로 대외정책 분야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보수 대법관 임명, 대규모 감세 정책, 강경한 이민 정책 등 대부분의 국내 정책은 전통적 공화당 입장 그대로다. 해외에서는 불안한 존재인 트럼프가 미국 국내에서는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년간 미국 정치는 트럼프라는 블랙홀 상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경우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정치인이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제 그 트럼프가 다시 4년을 통치할지, 아니면 포스트 트럼프 시대가 열릴지 결정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트럼프 개인에게 휘둘리는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이 처한 딜레마는 복잡하다. 공화당 대통령들의 실책과 실패를 틈타 정권을 되찾아온 것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와 트럼프 불확실성을 발판 삼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벌써 세 번째였다. 임기 첫 2년 동안은 민주당이 행정부·의회를 모두 장악한 단점 정부 상황에서 백신 드라이브와 공급망 위기의 돌파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에 이은 또 다른 중도파 바이든에게는 임기 내내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정책 도구가 없었다. 교체된 후보 카멀라 해리스 역시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양극화 정서를 부추김으로써 민주당 고유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선거인단과 경합주라는 미국 특유의 선거 제도에 발목이 잡힌 민주당의 현실이기도 하다. 만일 민주당이 이번에 패배한다면 반트럼프와 양극화 논리 외에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에게 다가갈지에 대한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만일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이번 미국 대선의 교훈은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는 경제라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인플레이션이 미국 대선의 결정적 변수인 상황은 1980년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라는 정치인에 대한 이해 불가 차원의 미국 사회의 관용성도 한몫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에 트럼프가 더 적격이라는 워싱턴포스트 설문 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또한 젠더 정치가 인종 변수와 만나는 새로운 현상도 예상해 볼 수 있다. 흑인 남성과 라티노 남성이 트럼프로 돌아선다면 민주당에 큰 숙제가 될 전망이다. 반대로 해리스가 승리한다면 팬데믹 이후 활성화된 조기투표가 민주당에 구조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선거일(day)이 선거주(weeks)로 바뀐 상황에서 중도층의 선호보다는 지지층의 투표가 중요한 양극화 선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이민 이슈에서 우위를 점하고도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공화당 내부에서는 트럼프 방향성에 대한 거센 반격이 시작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임기는 4년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 간 분명한 태도 차이를 보이는 트럼프에게 외교 레임덕이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트럼프는 관세에 집중할 것이다. 행정명령으로 가능한 자신의 대표 정책이자 중국을 제압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10% 보편 관세는 법적 근거 부족으로 인해 의회가 아닌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공약을 잘 지키는 트럼프는 국경 위기 해결에도 주력할 텐데 장벽 건설 재원 충당을 놓고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끝난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재선 임기 첫해부터 거론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만약 해리스가 승리한다면 모든 것은 5일 함께 치러지는 연방의회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현재 예측대로 내년 새 상원이 공화당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면 적어도 해리스 대통령 첫 2년 동안에 입법 성과를 내는 일은 어려워진다. 자녀 양육과 주택 취득 관련 세금 혜택을 부여하거나 부자 증세를 시도하는 일은 아예 물 건너간다. 만약 하원까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는 경우 2025년에 만료되는 트럼프 세금 감면 법안의 기한 연장을 놓고 해리스는 의회와 전면 대결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다만 중국과의 배터리 산업 경쟁에 도움이 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해리스 대통령 시대에 지속된다. 축소된 형태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를 공화당이 시도하더라도 해리스 대통령의 거부권 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단일대오를 촉진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은 당분간 이어가겠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불편한 동거는 민주당 내 논쟁 요소로 작동할 전망이다. 이제 트럼프의 국정 심판 승리일지, 해리스의 정치 양극화 방어일지 뚜껑을 열고 기다릴 일만 남았다.
◆서정건 교수=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 풀브라이트 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조교수, 미국정치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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