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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집중 인터뷰]홍경 "그 마음에 시네마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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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설'에서 첫사랑 빠진 용준 역 맡아

"수어 3개월 노윤서와 천천히 서로 알아가"

"수어는 상대에 온전히 집중 그 태도 배워"

"용준처럼 온 마음 다해 사랑해보고 싶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빈틈 보이고 싶었다"

"채우지 않고 비워 놔서 그게 시네마틱 해"

뉴시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랑에 관해 얘기하는 한국영화 계보는 이제 끊겼다. 2010년대 이후 로맨스는 사실상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르가 돼버렸다. 당연히 로맨스 영화 하면 떠오르는 배우도 없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스타 배우들에겐 멜로 대표작 하나 쯤 있는 게 당연했지만, 최근 주목 받는 배우들 중 로맨스 영화 대표작을 갖고 있는 경우는 전무하다. 이제 한국영화계 로맨스 공동화는 대만·중국·일본 영화가 겨우 메꾸고 있을 뿐이다.

낭만이 설 자리를 잃은 시대에 영화 '청설'(11월6일 공개)은 반갑게 이질적이다. 1년에 1편 보기 힘든 사랑 영화인데다가 하나 같이 도파민을 외치는 시기에 오히려 자극을 줄이고 더 천천히 가겠다고 유유자적 하고 있으니 말이다. '청설'의 주인공 '용준'도 그런 사람이다. 사랑에 빠진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이 청춘이 에너지가 적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용준은 그 넘치는 힘을 상대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쓴다. 상대 감정을 헤아리고 내 감정을 숨김 없이 전하기 위해 정도(正道)를 걷는다. 대신 머뭇거림 없이, 생각을 멈추지 않고, 눈을 떼지 않는다.

용준을 연기한 배우 홍경(28)도 딱 그렇게 연기하는 듯하다. 그는 로맨스물에서 흔히 내보이는 과장된 감정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용준이 여름에게 다가가는 그 속도처럼 홍경도 한 장면 한 장면 진심을 다해 관객에게 서서히 스며드려 한다. 그가 그렇게 애써 표현해 보이기에 자칫 어리숙해보이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용준은 순수하고 맑아 보일 수 있다. 그렇게 홍경의 연기엔 설득력이 생긴다. '청설' 한 편으로 한국영화 로맨스 계보가 다시 쓰이는 건 무리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가 당분간 홍경의 대표작이 될 거란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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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이 작품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20대 배우가 주가 되는 영화, 그런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될 수 있다는 게 각별하고 특별했다. 언론 시사회 때 완성된 영화 처음 봤다. 너무 좋더라. 떨리고 설렜다. 유난히 소중하다. 이 영화에 담긴 우리 마음이 잘 전해졌으면 한다."

-2009년에 나온 동명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처음엔 리메이크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만들어진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것에 매력을 못 느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언제 어느 때든 필요한 순수함을 봤다. 요즘엔 모든 게 다 빠르고 금방 휘발되지 않나. 그런데 이 이야기엔 상대 마음에 가닿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있었다. 그건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제대로 된 듯한 순수함, 빠르지 않은 그 속도가 맘에 들었다."

-노윤서와 함께했다.

"노윤서 배우와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준 감독님 포함 제작진에게 감사하다. 이런 영화를 찍을 때, 나는 아직 어떤 감정을 갑작스럽게 팍 튀어나오게 하긴 힘들다고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촬영 전 3개월 간 수어를 배울 시간이 있었다. 이 기간 일주일에 3회 이상 노윤서·김민주와 함께 수어를 배웠다. 처음엔 서로 어색했다. 그러나 빨리 알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가까워졌고, 그러면서 상대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됐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게 작품에 드러난 것 같다."

-노윤서는 어떤 배우였나.

"아마도 난 노윤서의 일면만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명하고 영민하고 똑똑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해야 하나. 배우는 현장에서 연기 외에 해야 할 일들도 있다. 그럴 때 노윤서는 리더십이 있더라. 그런 건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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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대사를 수어로 해야 했다.

"내 수어 연기가 부족할 순 있지만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수어를 할 때 표정이나 몸짓을 계획하지 않았다.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정과 몸짓이 따라오게끔 하고 싶었다. 단순히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를 전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전하는 거니까 거기서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더라. 수어를 할 땐 상대를 집중해서 지켜봐야 한다. 상대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는 것. 그 태도를 수어를 통해 배웠다."

-기억에 남는 수어 연기 장면 하나를 꼽아 줄 수 있나.

"영화를 보니 내가 저런 연기를 했었나 싶은 것들이 있다. 용준이 여름과 호숫가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력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다 떨어졌다'고 말할 때 몸을 한 쪽으로 쓱 기울인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다. 그런 걸 발견할 때 재밌고, 기억에 남더라."

-용준이는 어떤 캐릭터였나.

"용준이에게 많이 배웠다. 용준이는 자신이 처음 느끼는 감정, 첫사랑이라는 그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그 마음을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마주한다. 사실 난 용준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난 용준이처럼 솔직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한 발 다가갔다가도 상대가 보인 움직임에 두 세 발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다. 그런데 용준이는 안 그런다. 계속해서 다가간다. 상대를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나였다면 아마 겁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준이는 여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용준과 다른 점을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닮은 점은 없었나.

"용준이는 아직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20대다. 하지만 난 용준이가 결국 그걸 찾아낼 것이고, 잘해낼 애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방식이 있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확실한 친구다. 아직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 좇는 게 있다는 것, 그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용준처럼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한다는 것도 닮았다."

-당신은 꿈을 빨리 찾은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지금도 고민이 많다. 고민 때문에 잠 못 이룰 때도 있다. 이게 마지막이면 어떡하나, 그 다음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자주 고민한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게 있긴 하나 연기라는 것에 확신에 차 있진 않다."

-용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맞다. 내 반응이 조금 오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용준이처럼 누군가를 그냥 사랑하는 것, 내 마음을 내비쳐 보이는 것, 그게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내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싶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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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준이라는 인물이 판타지스럽게만 보이지 않은 건 어쨌든 당신이 이 인물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봐준다면 정말 감사하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용준이를 최대한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발버둥쳤다. 그리고 용준이를 들여다보면서 나를 마주하게 됐다. 용준이를 통해 내 못난 모습을 봤다. 그렇게 용준과 내가 교감하면서 이 캐릭터가 현실적인 인물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연기를 할 때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엔 어떤 아이디어를 냈다.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빈틈 없이 예쁘고 잘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서 감독님과 생각이 같았다. 수수하고 자연스럽길 바랐다.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 의상 모두 그렇다. 바람이 불면 머리가 날리길 바랐다. 빈틈이 많길 바랐다."

-첫사랑의 판타지에 관한 영화다. 당연히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도 있다. 그 중에서 이건 너무 판타지스럽다고 생각했던 건 없었나.

"우리 영화를 판타지라고 본다면, 그것 그대로 좋다. 완벽한 현실성 혹은 개연성을 갖춘 것, 그게 영화일까. 영화라는 건 현실에서 느끼지 못했거나 찰나여서 놓치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없는 것이라고 해도 이런 사랑을 우리 영화를 통해 느낀다면 된 것이다. 난 용준이나 여름이 같은 친구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본다. 내가 용준이를 알아 가면서 실제로 느꼈던 부끄러움이 있으니까, 그건 단순히 판타지라고만은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판타지가 현실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판타지로만 남는 건 아니라고 본다."

-판타지가 곧 영화라는 건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도 영화이지만 내가 시네마틱하다고 느끼는 건 찰나라서 되새김질을 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가져와서 현미경으로 보듯 펼쳐 보이는 것들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이지 않나. 그 순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영화라는 거다. 8초만에 생겨난 마음을 80분으로 바꿔 보여주는 것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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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클럽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요즘 많은 작품들이 혹시나 관객이 지루해하진 않을까, 그래서 보는 도중에 탈선하지 않을까 싶어서 모든 장면을 꽉 채워 넣는다. 그런 데서 느끼는 피로감이 있다. 클럽 장면을 극장에서 볼 때, 영화가 비워졌을 때 느껴지는 텐션이 있었다.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관객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할 때 그 긴장감이 참 시네마틱했다. 그런데 촬영할 땐 계속 음악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찍었다.(웃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용준이 엄마에게 실연을 고백하는 장면이 유난히 마음 아팠다. 부모에게 첫사랑의 아픔을 위로 받는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일 것 같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을 때 정혜영 선배님이 나를 보던 그 눈빛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선배님과 연기한 시간은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분량보다 훨씬 길었다. 선배님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그 장면을 함께 만들어갔다. 참 따뜻한 기억이었고, 내 연기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이었다. 용준이라는 인물을 나 혼자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혜영·현봉식 선배님과 했던 이런 교감 속에서 캐릭터가 구축됐다고 생각한다. 용준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면 더 명확히 드러나지 않나."

-'청설'을 볼 관객에겐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요즘 도파민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우리 영화는 도파민 없이도 관객을 매료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일단 와서 보면 좋아하게 될 거다. '청설'만의 영화적인 경험, 그 경험이 주는 집중도가 남다르니까. 누구나 용준·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기를 경험할 것이다. 그때의 그 말랑한 감정이 응축돼 있다. 찬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할 때 보면 그 감정을 다시 느껴보면 정말 좋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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