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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NW리포트]경영권 방어에 눈먼 고려아연…'유상증자'하나가 모든 판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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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0월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최근 벌어진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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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공개매수 이후 표 대결로 전환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꺼내든 '유상증자' 카드에 순식간에 판도가 뒤바뀌는 형국이다. 고려아연을 지지하던 여론의 흐름은 급격하게 바뀌었고, 요동치는 주가에 금융당국까지 결국 칼을 겨눴다.

'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 표 싸움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최 회장의 승부수는 고려아연이 유일하게 앞서던 '명분'마저 퇴색케 하는 모양새다.

변동성 커진 고려아연 주가…금감원 "강한 의구심" 제기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유상증자로 경영권 분쟁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을 들끓고 금융당국은 부정거래 가능성을 의심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고려아연은 "불법성이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여론은 심상치 않다.

고려아연이 '주당 67만원'에 총 373만2650주의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이번 유상증자가 100% 청약에 성공하고 자사주 소각도 계획대로 모두 이뤄지면 늘어나는 주식 규모는 16.7%다. 고려아연은 이번에 발행하는 신주의 20%인 74만6530주를 법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할 계획이다. 이는 전체 지분 중 3.34% 수준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가뜩이나 변동성이 컸던 고려아연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이후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종가 154만30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던 주가는 30일 108만1000원까지 급락했다. 31일에는 주가가 추가 하락하며 100만원 아래에 머물렀다. 1일 100만4000원을 회복한 주가는 4일 100만~110만원 안팎을 오르내리며 변동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발표한 바로 다음 날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위법 여부를 따져보겠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지난달 31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상장사 공개매수 합병 및 분할, 증자 등의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를 보면 상장법인 이사회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했는지 강한 의구심이 제기된다"며 "불공정거래가 확인되면 신속한 처리를 위해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이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력 잃은 명분 싸움…거센 최윤범 '책임론'



영풍·MBK연합의 거센 공세에 줄곧 열세에 몰리던 최윤범 회장이 승부수를 날렸지만 실상은 역풍에 직면한 모양새다. 불법성이 확인될 경우 의사회 의장인 최윤범 회장도 수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고려아연은 지분 열세에도 명분 싸움에서는 줄곧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영풍·MBK 연합보다는 사모펀드에 맞서 국가기간산업을 지키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최 회장의 명분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로 최 회장은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명분을 잃었고, 여론은 등을 돌렸다. "전 국민 유상증자를 통해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명분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유동주식 수 감소에 따른 상장폐지 위험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상장폐지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자사주 공개매수신고서에는 '상장폐지 요건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혀 신고서가 허위 기재됐다는 시장의 의심만 증폭되고 있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가운데 2조3000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쓴다는 데 대해서도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반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회사가 시가보다 비싸게 산 주식을 다시 싸게 팔아 빚을 갚는 셈이다.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플랫폼인 스마트카르마(SmartKarma)의 더글라스 킴 애널리스트는 "고려아연 유상증자 결정은 최악의 코리아디스카운트 사례"라며 "많은 투자자가 이 유상증자가 고려아연에 대한 자신들이 주권을 심각하게 희석할 것이기에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분 우위 차지할 '묘수'…국민연금 표심 흔들리나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명분으로 내세운 '국민기업' 뒤에는 '최윤범 회장 살리기'라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빙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분 경쟁에서 영풍·MBK 연합 지분을 희석해 우위에 서겠다는 시나리오다.

공개매수 이후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구조는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윤범 회장 측 35.42%, 영풍·MBK 연합 측 38.47%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다. 양측의 차이는 단 3.07%에 불과하다.

만약 이번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우리사주와 우호 지분을 합한 최 회장 측 지분은 최종적으로 36.07%로 추산된다. 이는 영풍·MBK 연합의 지분 35.56%를 근소하게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지분 우위를 위한 '묘수'가 자칫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반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과연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줄지 의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고려아연 주식 '7.48%'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최근 5년간 90%가 넘는 안건서 고려아연에 찬성표를 던져왔다. 앞서 올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당시 상정된 17개 모든 안건에서 고려아연 경영진이 낸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에도 국민연금에 강한 신뢰를 보였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장기적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한 답변과 관련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믿고 기다리겠다"며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고려아연은 물론 최 회장에게까지 칼끝을 겨눈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들끓는 여론에 영풍·MBK 연합의 명분에 힘이 실리는 방향으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고려아연에 표를 던지는 것은 부담이다.

이때를 틈타 영풍·MBK 연합도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이사회가 2조500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해 이 유상증자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기존 주주들에 대한 피해는 물론, 회사의 주주구성과 지배구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임시주주총회가 신속히 개최될 필요가 있어 법원에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다정 기자 d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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