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사이에 작성되는 계약서에는 일반적으로 계약당사자의 이행능력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다른 계약 상대방이 계약을 해제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약해제조항이 삽입된다. 이 때 이행능력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로서 주로 포함되는 문구가 '계약당사자의 재산에 압류, 가압류, 가처분, 경매 등 강제집행이 있는 경우' 및 '계약당사자의 회생절차개시신청이나 파산선고신청이 있는 경우'다. 특히 회생절차개시신청이나 파산선고신청을 진행했다는 것은 이미 계약당사자가 채무초과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으로서는 계약상 형성되는 채권, 채무관계를 성실히 이행하리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기에 언제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이같은 조항을 삽입해두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당사자의 회생절차개시신청, 파산선고신청이 있으면 언제든 약정에 의해 그 상대방이 해제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계약이 아직 전부 이행되지 않은 '미이행 쌍무계약'이고, ▲계약 당사자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면 아무리 약정상 해제권에 대한 조항을 두었다고 하더라도 계약 상대방은 해제권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회생절차의 취지와 목적을 고려해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회생절차는 채권자들이 경쟁적으로 강제집행에 나서는 것을 중지시키고 채무자로 하여금 영업을 계속하면서 회생계획안에 따른 채무를 채권자들에게 공정하게 변제하도록 하는 절차다. 따라서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에 의해 선임된 관리인(주로 대표이사)에게 미이행쌍무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부여되고(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 관리인은 회생을 위해 영업의 계속에 필요한 미이행쌍무계약에 대해선 계약 이행을 택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대방은 계약상 도산해제조항이 있더라도 해제권을 인정받을 수 없고,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물론 회생절차 개시 이후에 발생하는 채권은 '공익채권'으로, 회생절차에서 전액 변제받을 수 있다.
다만 예외는 있다. 법원은 회생절차 진행 중에 계약을 존속시키는 것이 계약 상대방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거나, 회생채무자의 회생을 위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도산해제조항에 의한 해제가 허용된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23. 1. 13. 선고 2021나2024972판결). 예를 들어 계약상 약정된 대금의 수준이나 그 내용이 계약 상대방에게 매우 불리하고, 회생절차 개시로 인해 그 시기까지 공급한 물품에 대한 대금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의 이행을 강요할 경우 계약 상대방 또한 재정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할 위험이 있다거나, 회생채무자의 영업에 필요하지 않은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이 이행을 택하는 경우라면 계약 상대방은 이러한 사실을 들어 예외적으로 도산해제조항의 효력이 발생함을 주장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채무자회생법이 적용되는 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사업자들이 지니고 있는 일반 민사적 상식과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채무자의 갑작스러운 도산절차 진행으로부터 계약상 발생하는 채권을 보호하려면 각종 담보권 설정이나 계약상 권리, 의무를 규정함에 있어 계약서 작성시부터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잘못된 채권 신고, 부적절한 시기의 각종 의견 제출로 인해 이미 회생계획안이 모두 인가되고 난 후 억울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채권의 발생원인이 다수이거나 그 발생금액이 큰 경우, 계약상 권리의무가 얽혀있는 경우 등에는 반드시 변호사를 찾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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