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불확실을 이해하는 확실한 방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후·경제위기 등 불확실한 미래

초기의 작은 오차들이 점차 증폭

다양한 변수로 예측하기 어려워

혼돈기하학 등 기반 논리적 접근

확률적 미래 예측의 원리 풀어내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팀 파머/ 박병철 옮김/ 디플롯/ 2만7800원

1980년대 영국인들은 BBC TV 기상통보관 마이클 피시의 날씨 방송을 믿었다. 그의 명성은 1987년 10월16일 하룻밤 새에 곤두박질쳤다. 전날 일기예보 중 피시는 한 시청자가 ‘허리케인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화했다며 “걱정할 것 없습니다. 허리케인은 오지 않습니다!”라고 장담했다. 다음날 300년 만의 초대형 허리케인이 발생했다. 22명이 숨지고 4조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났다. 이 허리케인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나비효과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국내에서는 걸핏하면 날씨 예보가 빗나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신간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를 읽고 나면 이를 기상청의 태만 탓으로 돌리기 힘들어진다. 이 책은 기상현상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가 왜 어려운지 프랙털기하학(혼돈기하학) 등을 기반으로 논리정연하게 보여준다. 또 혼돈기하학을 통해 기후위기, 전염병,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양자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다. 옥스퍼드대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영국 기상청 과학공무원으로 일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세계일보

날씨는 불확실성의 대표적 사례다. 초기의 작은 오차가 시간에 따라 증폭되는 프랙털기하학을 이해하면 기상현상을 내다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게티 이미지 뱅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갑작스러워 보이는 사건이 어떤 경로로 발생하는지 이해하려면 혼돈 이론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로렌즈의 행적부터 따라가야 한다. 수학을 전공한 로렌즈는 1956년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로 채용됐다. 계약서에는 ‘30일 후 일기예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팀을 이끈다’는 항목이 있었다. 당시 일기예보는 하루이틀 뒤도 내다보기 버거웠다. 그러나 일부 통계학자들은 장기 예보는 쉬운 문제라고 장담했다. 과거 날씨를 뒤져 참고하면 된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알듯 과거 날씨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로렌즈는 단순한 계가 비주기적 특성을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세 개의 변수 X·Y·Z로 이뤄진 세 개의 방정식으로 유체의 운동을 서술하는 수학모형을 만들었다. 로렌즈의 모형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 X·Y·Z를 물·공기 같은 유체와 연관 짓는 건 의미가 없으니, X·Y·Z를 시간에 따라 값이 변하는 무언가로 여기면 된다. 로렌즈 방정식을 장기간 돌려보니 ‘모형의 상태는 결코 반복되지 않음’이 확인됐다.

세계일보

팀 파머/ 박병철 옮김/ 디플롯/ 2만7800원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로렌즈 방정식에서 컴퓨터가 초기 X값을 0.506127 대신 0.506으로 넣는 식으로 작은 오차가 생기자 시간이 갈수록 큰 오차로 증폭됐다.

로렌즈 방정식을 풀어서 해를 쭉 연결하면 궤적이 그려지면서 도형이 생긴다. 이 도형을 ‘로렌즈 끌개’라고 한다. 로렌즈 끌개는 X·Y·Z의 변화를 찍은 점들이니 3차원 입체일 듯하지만, 실제 끌개는 1, 2, 3차원 모두 아니다. 로렌즈 끌개의 프랙털 차원은 전형적인 변수값으로 계산하면 2.06이다.

로렌즈 끌개를 보면 작은 오차가 때로 큰 차이를 낳음을 알 수 있다. 로렌즈 끌개의 한 지점에 오차 범위에 해당하는 고리를 그린 후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보면, 어떨 때는 모양이 유지된다. 미래가 크게 변하지 않는 셈이다. 반면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고리는 바나나 모양으로 바뀌고, 또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면 아예 끌개 곳곳에 점들이 퍼져 버린다. 미래가 바나나 모양 범위에서 달라지거나, 예측이 힘들 만큼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X·Y·Z 3개의 변수만으로도 예측이 골치 아픈데, 날씨를 좌우하는 변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는 “미래에 슈퍼-슈퍼 컴퓨터가 등장해도 (날씨 상태 공간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며 “현재 사용되는 일기예보모형의 상태 공간은 10억 차원을 가뿐하게 넘지만, 날씨가 가질 수 있는 실제 상태 공간의 차원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고 설명한다.

수학자들의 골칫거리 중 하나로는 난기류가 있다. 난기류는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크기의 소용돌이다. 나비에-스토크스방정식은 이 유체의 운동을 서술한다. 이 방정식은 23개의 기호로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규모의 소용돌이를 설명한다.

대기는 부피가 워낙 커서 격자(그리드)로 잘게 나눠 각각 방정식을 적용해야 한다. 이 구획을 그리드박스라고 한다. 그리드박스를 100㎞로 나누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공기 흐름 등은 무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초기 오차로 작용한다.

또 격자를 반으로 줄여도 예측할 수 있는 미래는 두 배가 아니라 이전의 절반만큼만 늘어난다. 100㎞일 때 7일이면 50㎞일 땐 10.5일 앞의 날씨만 내다볼 수 있다. 이렇게 계산을 거듭해보면 예측할 수 있는 날씨는 14일이 한계다. 그렇다면 예측 가능한 미래에는 한계가 있는 걸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나비에-스토크스방정식은 수학의 난제로, 100만달러의 상금이 걸린 ‘새천년상’의 문제 중 하나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