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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PC 집착, 몰락한 게임업체 [최연진의 IT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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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파이어워크의 온라인 게임 '콘코드'의 등장인물들. 파이어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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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을 닫은 해외 게임업체가 인터넷에서 독특한 이유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소니 계열사 가운데 가정용 게임기(콘솔)와 게임을 개발하는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는 10월 30일 게임개발 자회사 파이어워크 스튜디오를 폐쇄하고 2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파이어워크는 소니가 온라인 게임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게임 개발비를 포함해 자그마치 4억 달러(약 5,500억 원)를 들여 지난해 인수한 업체다.

소니가 막대한 자금을 들인 회사를 1년 만에 접은 것은 한 편의 게임 때문이다. 파이어워크가 근 8년간 개발한 온라인 게임 '콘코드'다. 온라인 사격(슈팅) 게임인 콘코드는 여러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각종 무기로 대결을 벌이는 게임이다. 지난 8월 큰 기대를 모으며 공개됐으나 이용자들의 혹평 속에 최대 동시 접속자가 697명에 그치는 수모를 겪으며 열흘 뒤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용자들이 콘코드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한 것은 잘못 적용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다. PC란 어떤 콘텐츠나 서비스를 만들 때 성별, 인종, 민족, 종교, 성 소수자 등 각종 차별과 편견을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 속에 PC를 반영하는 것을 탓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잘못된 방법이다. 잘생기거나 예쁜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게임과 달리 콘코드의 등장인물들은 기괴하다. 외계인 등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으며 뚱뚱하거나 바짝 마른 인물들이 내장을 연상케 하는 옷 등 이상한 의상을 입고 있다. 이를 통해 파이어워크는 미에 대한 편견과 인종, 성 차별을 해소하려고 시도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게임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현실과 다른 인물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게임 속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잘생긴 주인공이기를 원한다. 몇만 원의 돈을 내고 게임을 하면서 일부러 흉하고 괴상한 인물을 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파이어워크가 헤아리지 못한 것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다. PC에만 집착한 나머지 사람들이 게임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놓치면서 게임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못난 인물과 잘난 인물을 비슷한 숫자로 골고루 배치하고 이용자가 취향에 따라 선택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콘코드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PC에 거부감을 갖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파이어워크 직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한 글을 보면 사내에서도 PC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직원들이 잘못 적용된 PC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조차 힘든 분위기였다. 과다한 PC에 따른 실패 선례는 흑인 인어공주와 라틴계 백설공주가 등장하는 디즈니 작품에서 익히 봤다. 그런데도 파이어워크는 반면교사 삼지 않고 같은 전철을 밟았다.

게임 애호가들은 파이어워크의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안타까워하기보다 오히려 반겼다. 이용자들의 반응을 보면 형식에 매몰돼 본질을 잃어버린 기업이 겪는 말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서비스와 상품은 소비자, 즉 시장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파이어워크의 몰락이 주는 교훈이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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