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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기고] 세계 1억2000만 강제 실향민, 국제사회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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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장


지난달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다시 발을 디뎠다. 2020년부터 2년간 유엔난민기구 미얀마 대표로 근무하던 곳이다. 한때 활기 넘쳤던 라카인 지역 해변은 지금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1년 전 다시 격화된 분쟁으로 인한 미얀마 내 국내 실향민은 340만명이 넘는다. 한때 융성했던 지역사회가 마주한 악화 일로의 현실을 보며 슬픔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일상을 이어가려는 미얀마인들의 강인한 의지를 보며, 머무는 내내 복잡한 심경으로 잠을 설쳤다.

유엔난민기구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방문한 많은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지난 2월부터 45국의 난민 및 실향 위기 대응을 총괄하기 시작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강제 실향을 야기하는 위기가 발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과거에 시작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미얀마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히고 있다.

미얀마 분쟁은 더 많은 이를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내몬다. 우기가 끝나는 이 시기마다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안전을 찾아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의 이동이 증가한다. 폭력, 박해, 절망을 피해 떠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바다에서 더 큰 위험을 마주한다. 지난해에만 로힝야 난민 약 4500명이 안전을 찾아 바다로 위험한 여정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560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이제 더 큰 인명 손실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은 행동해야 한다. 각국 정부, 세계은행, 시민사회 등 국제사회의 하나된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시아 전역에서 난민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민간 부문의 참여 또는 공여국 정부의 투자와 같은 협력 성공 사례를 봐왔다. 대한민국 정부도 미얀마 위기 상황을 위해 수년간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다. 미얀마 북동부 카친주(州)의 실향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400만달러 규모 지원이 좋은 사례다. 이 지원은 분쟁으로 인한 미얀마 국내 실향민 약 1만1600명에게 안전한 거처, 건강 서비스 같은 삶의 재건을 위한 장기적 해결책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난민을 보호하는 국가들은 자원 부족을 겪고 있어,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강제 실향은 더 이상 특정 국가나 국제기구만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다뤄야 할 공동의 숙제다.

고향을 떠난 모든 난민은 다시 안전해진 집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때까지 난민이 교육받고 일할 기회, 병원에 갈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 세계 1억2000만명이 넘는 강제 실향민이 기다리는 것은 평화, 안전, 그리고 삶을 재건할 기회다. 이 기다림이 헛되지 않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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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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