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오전 평양 일대에서 시험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시험 발사를 통해 전략미사일 능력의 최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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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두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은 러시아가 ICBM을 시험 발사하며 핵 공격 훈련을 펼친 바로 이튿날인 31일 신형 ICBM로 '판박이' 도발을 강행했다. 북한이 ICBM을 쏜 것은 작년 12월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하고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데 이어 미국을 향해 공개적 무력 시위에 나선 모양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당일 ICBM 발사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발사 현장에서 "이번 발사는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해온 적수들에게 우리의 대응 의지를 알리는 데 철저히 부합된 적절한 군사활동"이라며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군 당국에서는 북한이 이번 발사에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려는 의도를 담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또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 밀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날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북측의 ICBM 발사 의도에 대해 "미국 대선이 임박해 있는 시점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판단과 현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이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9월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핵탄두 제조의 핵심인 핵물질 생산 역량을 과시했다. 또 최근에는 지하화된 ICBM 기지 내부도 공개적으로 보도했다. 이어 이번에는 진전된 ICBM 역량을 부각시키며 대선을 앞둔 미국에 대해 계단식으로 위협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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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미국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러시아 파병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ICBM 시험 발사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북한이 김 위원장의 군사적 치적을 쌓고 파병된 장병의 가족들 불안감을 불식시키려는 내부적 목적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세부 제원을 살펴보면 그동안 주력해온 고체연료 기반 ICBM과 다탄두 기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이날 고각발사로 모의 탄두를 7000㎞ 고도까지 쏘아 올렸다. 고체연료, 로켓·미사일 동체 전반에 걸쳐 기술적 개선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로켓 전문가인 장영근 전 항공대 교수는 북한이 이번 발사로 ICBM의 '다탄두 각개목표설정 재돌입 비행체(MIRV)' 역량과 관련해 발전을 이뤘을 것이라고 말했다. MIRV는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개의 탄두를 탑재해 각각 독립된 표적을 타격하는 개념이다. 현재 ICBM을 운용하는 국가에서는 모두 MIRV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장 전 교수는 "북한이 ICBM의 동체는 물론 로켓 모터 크기도 키워 더 높은 정점고도와 훨씬 긴 비행시간을 기록했다"면서 "이는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ICBM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의 한계를 미사일 자체의 '힘'으로 보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펼쳤다. 이에 대해서는 이성준 실장도 "최근에 북한이 공개했던 12축짜리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ICBM을)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로 분석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공군의 KF-16 전투기 4대와 주한미군 소속 F-16 전투기 4대가 31일 연합 공격편대군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한미는 공중전력 110여 대가 참가한 공중훈련을 실시했다. 합동참모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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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국방장관은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어 북한을 맹비난했다. 양국 장관은 회의를 마친 이후 공동성명을 발표해 향후 작전계획에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포함시켜 북핵 억제·대응 능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이번 공동성명에 '비핵화'를 9년 만에 빼면서 북한의 핵개발 현실을 감안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비핵화 문구는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포함됐는데 9년 만에 제외됐다.
한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워싱턴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과 관련해 "언제 투입될지 모르지 않는가"라며 "(북측이) 미국 대선까지 버티면서 대선이 끝나고 상황을 봐서 투입하려고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파병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파병 외에 모니터링단이나 전황분석단 등은 군 또는 정부가 앞으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어떤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면서 북한이 어떠한 기습 도발도 획책할 수 없도록 빈틈없이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합참은 이날 대북 경고 성명을 발표해 북측이 불법적 도발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안찬명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우리 군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불법적 도발을 지속 감행하고 있다"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한미는 서해와 중부 내륙 공역에서 110여 대의 공중전력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연합 공중훈련을 펼치며 대북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합참은 훈련 사실을 공개하며 북한의 TEL을 가정한 표적을 F-15K가 공격해 폭파하는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김성훈 기자 /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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