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알프레트 베게너 (1880~1930)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과학을 공부했다. 블라디미르 쾨펜에게 기후학을 배웠다. 우리가 옛날 지리 시간에 외우던 ‘쾨펜의 기후 분류’를 만든 그 사람이다. 베게너의 주된 관심은 북극 지역의 기상과 기후. 연구를 위해 그린란드를 여러차례 탐사했다. 1차 탐사(1906~1908년) 때는 덴마크 기상학자들과 함께 그린란드 해안을 다녔고, 2차 탐사(1912~1913년) 때는 걸어서 그린란드를 횡단했다. 당시 가장 북쪽에서 내륙 빙상에 머문 기록을 세웠다. 1913년에 탐사에서 돌아온 뒤 스승 쾨펜의 딸 엘제 쾨펜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1910년대에 베게너는 대륙이동설에 깊이 빠졌다. 남아메리카 서쪽과 아프리카 동쪽 해안선이 서로 딱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은 16세기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훈련받은 과학자였던 베게너는 이 생각을 과학적 가설로 발전시켰다. 멀리 떨어진 대륙들 사이에 지질학적 공통점을 찾았다. 암석의 유형이며 남아 있는 화석이며 고기후학적 증거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계는 베게너의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무렵 과학으로는 대륙을 이동시킬 강력한 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구 깊은 곳에서 맨틀 대류가 일어나고 바닷속 깊은 곳부터 지각이 움직인다는 사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베게너는 자기 이론이 널리 인정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29년에 3차 탐사를 다녀온 뒤 1930년에 탐사대를 이끌고 마지막 4차 탐사를 떠난다. 북극의 기상과 기후를 연구하는 그린란드 연구 기지를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대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연료와 식량이 부족했다. 베게너와 동료 빌룸센은 보급품을 가지러 길을 나선다. 베게너의 마지막 모험이었다.
이듬해 베게너의 주검이 눈 속에서 발견된다(빌룸센의 주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탐사대의 리더 베게너는 동료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가 숨진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생일이던 11월1일 무렵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따름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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