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북한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면서 전투원들의 훈련실태를 점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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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5일 러시아 담당 부상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사실상 시인한 가운데 북한 헌법 등에 이번 파병과 관련한 명시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내부적으로 일정 절차를 거쳤을 수는 있지만, 자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근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셈이다. 북한이 파병 사실을 내부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파병의 최종결정권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이런 허점을 활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문화정보부 산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우크라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엑스 계정 갈무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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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29일 관련 전문가와 함께 북한 사회주의헌법(2019년 8월 개정)을 분석한 결과 파병 관련 조항은 전무했다. 북·러가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협력조약) 비준을 통해 사후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이처럼 파병 관련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에 해당 조약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은 존재한다. 북한의 대외활동 원칙을 담고 있는 17조다.
17조는 "국가는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인민들과 단결하며 온갖 형태의 침략과 내정간섭을 반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 계급적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한다"고 규정한다. '모든 나라 인민'에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포함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셈이다.
북·러 양국이 해당 조약의 비준·발효 작업에 속도를 내는 점, 지난 6월 북·러 정상회담 당시 "우크라이나에서의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 정부와 군대와 인민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와 굳은 연대성을 표시한다"는 김정은의 발언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8기 7차) 확대회의에서 한국 수도권 일대를 가르키며 군 수뇌부와 토론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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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북한군이 '당의 군대'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당규약에도 주목했다. 조선노동당 규약(21년 1월 개정)은 "조선인민군은 모든 군사정치활동을 당의 영도 밑에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각종 회의·협의체를 만들어 노동당 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공을 들여온 만큼 형식적인 절차라도 밟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지난 16일 러시아 극동연해주 우수리스크 소재 군사시설에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400여명의 병력이 운집해 있는 모습. 국정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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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나 당규약에 파병과 관련한 근거가 없는 것은 전시동원체제를 표방하는 북한이 해외 파병이라는 상황 자체를 상정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파병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내외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최고 존엄의 영상(이미지)'에 생채기를 내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유일지도체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는 만큼 김정은의 승인은 어떤 절차로든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같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무 부서인 군수공업부가 다각적으로 검토해 올린 보고서에 김정은이 수표(서명)하는 방식으로 승인한 것을 공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군을 관장하는 총참모부의 보고서를 승인하는 형식으로 김정은의 파병 관련 의사결정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독립 언론이라고 주장하는'아스트라'가 지난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공개한 북한군의 모습. 아스트라는 해당 영상에 대해 ″블라디보스토크 '세르기예프스키에 위치한 러시아 지상군 제127자동차소총사단 예하 44980부대 기지에 북한군이 도착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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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김정은이 국제범죄에 대한 처벌을 위해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된 북한군이 집단살해죄, 반인도범죄와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를 경우 이들에 대한 지휘 책임은 파병과 참전을 결정한 김정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여지가 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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