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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20년차 ‘노장’으로 승부수…“돈슨” 욕먹던 넥슨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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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승부수’로 부활한 국내대표 게임사



■ 경제+

넥슨은 1994년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책상 2개로 시작해 30년간 세계 게임 역사에 ‘최초’ 기록을 여러 건 새겼고, 한 해 3조 9323억원(지난해 기준)을 버는 굴지의 게임사로 성장했다. 물론, 30년이 영광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회사의 미래가 어두웠다. 내놓은 게임마다 쓴맛을 봤고, 모바일 시장 공략에 실패해 2019년에만 5개 게임을 접었다. 넥슨 특유의 부분 유료화 BM은 ‘돈슨’(돈만 밝히는 넥슨)이란 부정직 이미지를 낳았고, 회사 매각설까지 돌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넥슨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3N’으로 묶였던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 경쟁사를 실적으로 크게 앞지르며 명실상부 ‘1N’ 시대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올해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매출 5조원을 노린다.

넥슨이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5년 전만해도 매각설에 휩싸일 만큼 휘청였지만, 올해는 한국 게임 회사 최초 매출 기록을 새로 쓰며 순항 중이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 19% 늘어난 1조3279억원, 영업이익은 5003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이다(자체 추정치). 바야흐로 ‘1N’ 시대가 시작됐단 평가가 나올 정도다.

중앙일보

김경진 기자


호실적을 이끄는 건 ‘던전앤파이터’(던파)와 ‘메이플스토리’(메이플), ‘FC온라인’, 합쳐서 ‘메던피’로 불리는 라이브 게임이다. 던파와 메이플은 각각 19·21년째 서비스 중인 든든한 캐시카우. 사드(THAAD) 사태로 중국 출시가 늦어졌던 던파 모바일이 지난 5월 드디어 출격했고, 단 4개월여 만에 매출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을 돌파했다. 덕분에 넥슨 2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30% 증가한 약 1조762억원을 기록했다.

신작 역시 매출과 완성도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힘을 보탰다. 지난해 1월 출시한 ‘데이브 더 다이버’(데이브)는 한국 단일 패키지 게임(상품 구매 후 추가 게임 내 구매가 필요 없는 단일 상품) 최초로 400만 장 이상 팔렸고,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았다. 전공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가 아닌 어드벤처(바닷속 탐험)와 경영 시뮬레이션(초밥집 운영)이 결합된 2차원(D) 그래픽 게임으로, 한국 게임의 고질병, 과도한 과금 없이 이룬 성과다.

또 루트슈터(슈팅게임에 롤플레이 요소가 더해진 장르) 게임 ‘퍼스트 디센던트’(퍼디) 역시 지난 7월 출시 직후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한때 동시 접속자 수 26만명을 기록하는 등 초기 흥행에 성공했다.

신작 성공은 매출 상승 이상의 의미도 갖는다. 장르 확장을 통해 기존에 넥슨이 취약했던 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게 돼서다. 어드벤처와 슈팅 장르는 북미·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넥슨의 한 고위 임원은 “현재 넥슨은 아시아 시장을 넘어 북미와 유럽 등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게임사로 도약하기 위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모델 치중하다 곤욕…5년전만해도 매각설까지



넥슨의 최근 질주가 놀라운 건, 최악의 위기 상황을 5년 만에 극복해내며 이룬 결과라서다. 당시만 해도 넥슨은 여러 악재에 흔들렸다. 600억원을 들인 ‘페리아 연대기’는 출시도 못 한 채 2019년 8월 개발을 중단했고, 200억원을 쓴 ‘야생의땅: 듀랑고’도 2년을 못 넘기고 같은 해 12월 문을 닫았다. 2012년 해외 인수합병(M&A)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365억엔(약 3300억원)을 들여 산 모바일 게임사 ‘글룹스’를 단돈 1엔(약 10원)에 처분했다. 2019년에만 모바일 게임 5개, 이듬해 7개 서비스를 종료했다.

중앙일보

김영희 디자이너


넥슨의 리더십과 개발 역량에 의문이 제기됐다. 넥슨 출신 업계 관계자는 “개발 책임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 성과가 없었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침체 됐다”고 말했다. ‘돈슨’(돈 밝히는 넥슨)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대표되는, 넥슨에 대한 이용자 불만도 절정에 달했다.

확률형 아이템 장사로 미성년 이용자 주머니를 털어간단 비난도 쏟아졌다. 게다가 고(故) 김정주 창업자가 회사를 통째 매각할 거란 소식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넥슨은 버텨냈다. 위기의 순간에도 기존 게임을 갈고 닦아 새 생명을 부여하는 업데이트에 더 투자했다. 신작 흥행에 자원을 쏟아붓고 기존 게임 운영에 힘을 빼는 다른 게임사와 차별화된 행보였다. 블록버스터급 대작에 힘을 주는 동시에, 작고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하는 이른바 ‘빅앤리틀’(Big&Little) 전략을 통해 개발 과정의 효율도 높였다.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반응이 냉담했던 게임은 빠르고 과감하게 접었다. ‘좋은 실패’ 사례를 쌓은 것.



“게임 재밌으면 판매 증가” 30년전 초심 붙잡고 재기



넥슨의 성공을 이룬 DNA는 계속 지켜냈다. 넥슨은 1996년 국내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선보였다. 또 1999년 출시한 ‘퀴즈퀴즈’를 통해 처음으로 부분 유료화 비즈니스모델(BM)을 도입했다. 여러 최초를 만들어 낸 개척자 DNA를 가지고 있는 것. 창업자도 막지 못하는 자율성과 도전정신 역시 넥슨의 정체성 중 하나다. 경영진이 시킨 게 아닌, 직원이 알아서 시작한 아래로부터의 성공 사례가 이어졌다. 데이브는 개발 초기 “이걸 넥슨 이름으로 낼 수 있겠냐”는 우려까지 나왔지만 결국 경영진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면서 대박을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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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여기에 굵직한 한방들이 더해졌다. 지금껏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대형 인수·합병(M&A)이다. 김정주 창업자는 빚을 최소화해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경영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회사를 구축했지만, 꼭 필요할 땐 빚을 내서라도 M&A를 성사시켰다. 2008년 던파를 만든 네오플을 2852억원에 인수했을 때가 그랬다.

이런 노력과 철학을 바탕으로 부활에 성공한 넥슨, 계속 질주할 수 있을까? 우선은 신작들의 흥행이 대형 IP 탄생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퍼디는 초반 기세와 달리 지난달 동시 접속자 수가 5만명대로 떨어졌다. 업데이트로 반등을 이뤄내야 ‘진짜 성공’이 된다. 메던피 인기가 식기 전에 뒤를 이을 대형 IP가 나오지 않으면 기대작 2~3개만 실패해도 또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중국에 치중된 해외 매출 비중은 북미·유럽과 일본으로 빨리 분산해야 하며,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 등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3N’ 아닌 ‘1N’ 시대 질주…신작 흥행·시장 확장 주목



지속 가능한 게임사가 되기 위해 넥슨은 던파 등 기존 IP의 생명력을 늘리고 성과를 높이는 종적 성장, 그리고 신규 IP로 새 장르와 지역을 개척하는 횡적 확장 두 갈래 전략을 추진 중이다. 창립 후 처음 슈터장르 전문 인력 150여명을 ‘슈터본부’란 한 조직에 모은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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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또 영화 제작사 인수나 투자에 참여하며 게임 외 콘텐트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30년 전과 똑같이 ‘재미’라는 본질이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미래 전략에 대한 질의에 “게임사가 재밌게 만들어 접속량(트래픽을) 먼저 높이는 대신 사업모델을 먼저 만드는 방식으로 변한 것 같다. 넥슨은 재미를 먼저 생각하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비틀었다. 이제 다시 트래픽, 재미에 집중할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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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민·윤상언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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