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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피눈물로 되찾은 정권’이란 미망과 탄핵 [박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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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0월6일 필리핀·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올라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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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대기자



“보수 대통령을 연이어 탄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반대하는 이유도, 대통령 탄핵으로 연결될 가능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솔직한 언급은 여당 내 많은 이들의 생각이고, 보수 진영 전체의 걱정일 터이다. 군사독재 시절은 차치하고라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안 되는 보수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은 국가부도를 맞았고 또 한 사람은 헌정사상 첫 탄핵을 당했다. 또다시 윤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보수 정치세력엔 매우 뼈아프고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피눈물 흘리고 되찾은 정권’이란 홍준표 대구시장의 표현은 그런 정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어느 대통령이나 지지율의 부침은 있다.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임기 단축하고 물러나라’는 말을 쉽게 하진 않는다. 지금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하는 얘기는 똑같다. ‘이런 상태로 2년 반을 더 지내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하는 탄식이다. 그럼 어쩔 건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남은 대통령 임기를 다 채우는 건 국가 운명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으리란 우려는 선을 넘고 있다. 그 중심엔 물론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러나 김건희 논란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 배신에 대한 절망감이다.



여야 정쟁 속에 위기 아닌 적이 별로 없었고, ‘정치는 4류’란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고비고비를 넘어 지금의 단계까지 온 데엔, 국정운영을 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큰 몫을 차지했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국민 다수가 대통령제를 지지한 이유도, 대통령은 어느 정치인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금, 정치권력과 그 정점인 대통령에게서 그런 긍정적 역할의 기대감은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치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의료개혁은 ‘2000명 증원’이란 대통령 한 마디에 꼬여 버렸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대통령은 보여주질 못한다.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대통령이 “우리의 경쟁력과 성장 추세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한 결과는 지난주 발표된 ‘3분기 경제성장률 0.1%’라는 충격적인 수치다. 곧 있을 미국 대선은 한국 경제의 시계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무모한 외교 정책은 훨씬 위태롭고 직접적이다. 북한군이 러시아를 도와 참전할 것이란 정보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오직 북한에 대응하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공급까지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단세포적 접근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살얼음판 위에 놓였다. 2년 반이란 시간은 이런 위기를 현실의 악몽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질곡을 벗어날 현실적 길은 탄핵 또는 임기단축 개헌뿐이다. 대통령제에서 탄핵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국민 믿음을 저버린 지도자를 바꾸는 합법적 수단이기도 하다. 탄핵에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는 ‘정치 불안정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은 다운된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켜는 재부팅의 효과가 있다고 상당수 정치·법학자들은 말한다. “1990~2018년 사이에 성공한 10건의 국가원수 탄핵 사례를 보면, 법치주의와 언론 자유 등의 항목에서 민주주의는 침식되지 않았다. 탄핵은 국가 리더십의 실종을 해결하고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톰 긴즈버그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팀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에서 밝혔다. 그 10건의 사례 중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포함돼 있다. 긴즈버그 교수팀은 “탄핵 절차만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의 외교정책 등 논란이 되는 행동을 자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건희 논란만 피해간다고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여사가 공개 행보를 자제하면 된다”거나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격화소양(膈靴搔癢·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일 뿐이다.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 탄핵의 교훈을 새기지 못하고 국가를 이끌 자세도 능력도 없는 인사를 권력의 꽃가마에 무임승차시킨 데 있다. 보수 정치세력이 고민해야 할 건 김건희 논란을 피할 편법이 아니다. 현 정부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 ‘어떻게 되찾은 정권인데…’라는 미련을 갖기엔 윤 대통령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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