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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횡설수설/송평인]“트럼프는 인격장애인” 美 정신과 의사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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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고대 로마의 미친 황제로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네로, 칼리굴라, 콤모두스다.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수금을 켜는 자기 탐닉적인 모습을 보였다. 칼리굴라는 주변 인물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콤모두스는 자신을 헤라클레스와 동일시하는 과대망상 증상을 보였다. 세 사람 모두 섹스에 집착하고 잔인했다. 물론 현대적인 정신질환의 기준으로 엄밀히 진단한 것은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APA)가 정신질환 통계 작성을 위해 사용하는 매뉴얼(DSM)이 있다. 이 매뉴얼의 5번째 개정판으로 2013년에 나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DSM-5는 정신질환을 22가지로 분류한다. 그중 하나가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미국 대통령 재선 도전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반사회적이면서 자기 탐닉적(narcissistic) 요소까지 있는 인격장애인이라는, 정신질환 전문가 225명 명의의 광고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이 광고는 반(反)트럼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연속 기획 중 하나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 측이 이 광고에 반박할 수 있는 길은 비슷한 수의 정신질환 전문가를 통해 골드워터 규칙(Goldwater rule)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배리 골드워터가 1964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팩트(Fact)라는 잡지가 정신과 의사들 상대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그를 ‘사이코’ ‘분열증 환자’라고 불렀다가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패했다. 이후 정신과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골드워터 규칙이 1971년 채택됐다.

▷DSM에 의한 진단은 ‘관찰 가능한 행위(observable behavior)’라는 기준에만 의존해야 한다. 광고를 낸 측은 “‘관찰 가능한 행위’에 무엇이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 1971년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수천 시간 트럼프의 행위를 관찰했으며 트럼프와 직접 교류했던 수십 명과의 인터뷰는 우리의 관찰 결과를 확증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완벽하기 어렵듯이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기 어렵다. 누구나 약간은 편집적이거나 강박적인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성인(聖人)이나 돼야 정신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해 함부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다만 환자로까지 분류하지는 않더라도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이 있다. 정도의 지나침이 대통령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에 달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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