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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한강 작가와 K컬처의 비판정신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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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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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10월 9일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광주와 제주에서 벌어졌던 국가 폭력을 다루었던 작가에게, 그것도 아시아인이자 여성인 작가에게 상을 수여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억압받고 소외됐던 목소리를 통해 더 이상은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국가 폭력들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인류가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았다. 한국이 성취해 오고 있는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민으로서의 나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자랑스러움을 넘어 중요한 방향성을 일러준다.

이 수상의 의미는 한국 문학 영역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 문화 영역에서도 중요하게 새겨야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역사적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보여준다는 주제적인 점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았던 K컬처의 영역에서도 사실 예외가 아니었다.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기생충’은 점차 심화되어 가는 한국의 계급 문제를 다루었고, ‘오징어 게임’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공포를 다루었다. 많은 영화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질곡들을 다루고 있고, 드라마들은 재벌, 정치권, 언론 등이 결탁한 절대 권력에 맞서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다룬다. 이러한 작품들이 진정한 비판을 수행하고 있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순응이나 수용이 아닌 비판과 투쟁을 지향하는 쪽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K컬처의 어떤 부분이 세계인들에게 호소했는가에 대해 한국인만의 정(情), 한(恨), 흥(興) 등 전통적인 정서들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무엇보다 K컬처의 비판정신이 세계인들의 공감을 끌어낸 보편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시선을 끄는 것은 특수성이지만 마음을 열게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한 폭력, 사회 구조적인 폭력, 자본주의에 의한 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들을 비판하는 K컬처의 비판정신은 보편적인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판정신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내면서 한국 사회가 가꾸어 온 피로 쓴 유산이자 우리의 문화적 힘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적 힘을 바탕으로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어떠한 제한 없이 생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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