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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18] 살벌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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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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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삶의 기지개를 켜는 봄과는 대조적인 계절이 가을이다. 메마른 기운이 대지를 덮어 대부분의 식생이 말라간다. 이 무렵의 대표적인 한자 표현은 ‘숙살(肅殺)’이다. 행위의 엄격함을 가리키는 숙(肅)과 생명을 짓누르는 살(殺)의 합성이다.

움을 틔워 무엇인가 자라나는 봄의 기운과는 아예 반대다. 서북(西北)에서 불어오는 가을의 찬바람을 오행(五行)의 쇠[金]로 인식한 점이 특징이다. 그 깡마른 쇠의 기운이 식생 등을 꺾고 잦아들게 만든다는 뜻의 단어가 곧 숙살이다.

그런 관념 때문인지 중국의 가을은 어딘가 스산하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경치를 찬탄하는 경우도 적잖지만 기운의 몰락을 말할 때도 많다. 숙살에 이어 가을을 말하는 단어들인 소조(蕭條), 소랭(蕭冷) 등은 쓸쓸함과 스산함을 뜻한다.

아울러 가을은 미뤘던 형벌(刑罰)을 집행하는 계절이다. 그 행위가 곧 추결(秋決)이다. 생명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곡식 영그는 여름을 피해 사형(死刑)을 벌이는데, 참수(斬首)가 대부분이어서 ‘가을 들어 베다’는 뜻으로 추후문참(秋後問斬)이라 적는다.

일반 중국인들은 추후산장(秋後算帳)이라는 말을 잘 쓴다. “가을걷이[秋收] 뒤에 제대로 따져보자”는 풀이지만, ‘앙갚음’ ‘복수’ 등이 속뜻이다. 따라서 중국인에게 가을은 결코 풍요와 너그러움만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봄과 여름에 해당했던 개혁·개방의 방향을 틀어 중국이 가을 분위기로 돌아서는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정도다. 그에 따라 국제적인 고립 추세가 심화하고 경기도 크게 하강하면서 중국의 민생은 또 차갑고 시린 겨울을 맞을 분위기다.

이 계절에 중국의 서민들이 따져보는 ‘가을걷이 성적표’ 소감이 궁금하다. 집권 공산당의 한결같은 위엄에 ‘문참’을 떠올리며 목을 움츠릴까, 아니면 더 이상 감내키 힘들어 앙갚음과 복수의 정서에 빠져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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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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