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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겨를]문학은 국익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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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문학 애호가들이 넘치는 세상이 된 것일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크고 작은 모임에서 노벨상 수상작을 비롯해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느 자활 참여자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사서 탐독한다고 했다. 또 어느 모임에서 만난 청년은 취직하느라 작파한 ‘신춘문예’에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의견을 구했다. 당연히 문학 행사에서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회가 단골 메뉴처럼 언급되곤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주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지금의 관심과 열기가 꾸준히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난해 문체부는 문학나눔 사업과 작은서점 사업을 비롯한 문학·출판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출판 환경과 지역 서점의 상태는 갈수록 고전을 면치 못한다. 노벨상 수상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문학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비관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해방 이후 예술과 예술가들을 대하는 ‘체제’의 시선이 결코 우호적이었던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권력은 규칙과 절차의 얼굴을 하고, 당연한 듯이 복종을 요구한다”고 한 말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관료화 문제를 상기한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 안의 ‘마음의 관료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엊그제 국정감사에 출석한 경기도교육감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몽고반점’ 관련 등의 부분에선 학생들이 보기에 저도 좀 민망”하다며 “(폐기 또는 열람 제한한 일부 학교 조치를)존중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의 파문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여전히 문예적 공론장에의 참여 자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문화와 예술을 압살하려는 시도는 완고하다.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세상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연구자인 브라이언 보이드가 “예술 작품은 정신의 운동장과 같다”고 한 말은 중요한 참조점이 되어야 한다. 정신의 운동장이 한없이 좁고 편협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한 듯하다. 하지만 예술 혹은 예술가의 가장 큰 적은 ‘진부함’이다. 블랙리스트가 진부함 그 자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초 뽑기’ 하듯 노벨상 수상작이건 아니건 간에 나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을 ‘배제’하는 행위는 드높은 문화국가의 할 일이 아니다. 갈수록 예술적 시민성(Artistic Citizenship)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절에 시대에 역행하는 이런 인식은 매우 유감스럽다.

나는 4·3, 5·18 등 역사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응시하고자 한 한강 작가의 남다른 작가정신에 경의를 보낸다. 그리고 시인은, 문학은, 국익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시인이, 작가가, 국익을 말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일 수 있다. 시인은, 작가는, 시대가 암울하면 할수록 자신이 살고 있는 암울한 시대에 대해 계속 노래를 부를 것이다. 지치지 않고. 문학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경향신문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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